2012년은 한국 언론사에 큰 획을 그은 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낙하산 사장의 전횡에 비틀거리던 공영방송 KBS와 MBC를 비롯해 YTN 연합뉴스 노조 등이 벌인 동시다발 장기파업은 언론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나는 꼼수다'가 일으킨 팟캐스트 열풍에 힘입어 다양한 형태의 대안언론 매체들도 등장했다. 해직 언론인들이 주축이 된 '뉴스타파'도 그 중 하나다. 1월 27일 첫 방송이 90만건의 조회를 기록하며 폭발적인 반응을 불렀던 '뉴스타파'는 6월 30일 21회 방송을 끝으로 시즌1을 접고 휴식 중이다.
'뉴스타파'는 현재 회원들의 기부를 기반으로 한 비영리 독립언론으로의 전환을 목표로, 회원을 모집 중이다. 1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18층 전국언론노조 사무실에서 이근행(46) 전 MBC PD를 만나 8월 17일 새롭게 선보이는 '뉴스타파' 시즌2 구상을 들어봤다. 170일간의 파업을 끝내고 이날 업무에 복귀한 MBC 노조에 들렀다 오는 길이라는 그는 전날 밤 기습적으로 단행된 보복 인사 소식을 전하며 "김재철이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고 성토했다. 그러나 "늦더라도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굳게 품고 있어서일까. 날 선 비판을 할 때도 그의 언어는 온순했고, 해직 2년을 넘긴 '투사 언론인' 맞나 싶게 인터뷰 내내 얼굴에선 소년 같은 맑은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시즌1 종료와 비영리법인 추진이 동시에 이뤄졌는데, 계기는 뭔가.
노종면 앵커(YTN 해직기자)가 불법사찰 국정조사 추진 등 YTN 노조 활동에 전념하기로 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마침 칼럼을 맡아온 CBS 변상욱 대기자도 콘텐츠본부장으로 승진해 함께하기 어렵게 됐고. 장기적으로 회원 기부를 기반으로 한 독립언론으로 가는 걸 논의해왔는데, 너무 고민하지 말고 이 참에 새 판을 빨리 짜자고 뜻을 모았다. 또 여름휴가와 런던올림픽이 겹치는 시기에 방송을 쉬고 재정비를 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시즌2 시작을 8월 17일로 못 박았는데, 새 진용은 갖춰졌나.
시즌1의 제작진이 최대 7명이었는데, 노종면 앵커 등이 빠지면서 저를 포함해 2명만 남게 됐다. 취재인력 보강을 위해 독립 저널리스트들 가운데 물색 중이다. 쉽지는 않다. 그래도 방송을 기다리는 분들이 많은데 마냥 미룰 수도 없어 일단 날짜부터 박았다.
-시즌2 구상을 듣기 전에 시즌1을 정리해보자. 뉴스타파는 어떻게 만들게 됐나.
언론, 특히 방송의 공정성 훼손이 워낙 심각한 지경에 이르다 보니, 전국언론노조에서 민주언론실천위원회(민실위)를 중심으로 팟캐스트 형태의 대안 영상보도물을 만들어보자는 얘기가 간간이 있었다. 구체화된 것은 지난해 11월쯤이다. 처음엔 작게 취재물 하나 올리는 정도로 생각하다가 제대로 한번 해보자 싶어 취재물과 인터뷰, 공갈영상 등을 갖춘 30, 40분 분량의 주간단위 비디오 팟캐스트 방송으로 얼개를 짰다. 간판은 참뉴스, 레알뉴스, 참깨뉴스 등 여러 아이디어를 놓고 표결했는데, 노종면 앵커가 낸 뉴스타파가 한 표 차로 뽑혔다. 제호는 신영복 선생(성공회대 석좌교수)이 써주셨다.
-매회 고 리영희 선생의 말로 방송을 시작한다.
언론이 진실을 추구한다는 건 당연한 얘기인데, 그 말을 늘 좌우명처럼 새기고, 보는 이들한테도 각인시키고 싶었다. 한데 (성대모사를 하며) "내가 목숨을 걸고 지키고 싶은 건, 애국, 국익 이런 게 아냐. 진실이야"라고 워낙 강하게 말씀하셔서, 고민도 좀 했다. 뜻을 왜곡해 국가, 민족을 부정하는 저놈들이 무슨 언론인이냐, 이런 공격을 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다행히 시비는 안 걸더라. 주 시청층인 20,30대 중에 '처음에 나오는 할아버지 누구예요?'하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리영희 선생을 다들 '뉴스타파 할아버지'라고 부른다.(웃음)
-1월 27일 첫 방송에서 노종면 앵커가 "죽어가는 저널리즘의 복원을 선언하고자 한다"고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기존 언론과 어떻게 다른가.
자본과 권력으로부터의 독립, 성역 없는 보도는 언론이 늘상 하는 얘기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 원칙을 바로 세워 주류 언론들이 왜곡한 사실, 회피한 이슈들을 다뤄왔다.
-기존 방송 시사프로그램 포맷을 답습한 것이 아쉽다는 지적도 있다.
새로운 포맷에 대한 고민을 안 한 건 아니지만, 정론보도를 한다며 '비디오판 나꼼수'를 만들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제작진?모두 기존 방송사 출신이어서 그렇게 길들여졌다고 볼 수 있고, 나꼼수식 풍자를 할 능력도 없고. 내용도 포맷도 무겁고 칙칙해서 보기 힘들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하지만 음식도 맛과 향이 너무 강하면 금세 질리지 않나. 중요한 것은 내용이다. 탐사보도물답게 정공법으로 가는 것이 장기적으로 바른 길 같다.
-첫 방송 반응이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언론노조에 있던 낡은 6㎜카메라 한대에 애들 졸업식 찍어주는 50만원짜리 캠코더 2대를 사서 시작했다. 캠코더 들고 정연주 전 KBS 사장 인터뷰 하러 갔더니 재미있다고 웃으시며 "대단한 일이 될 것"이라고 격려했다. 그런데 1회를 첫날 5만명이 보더니 1주일에 50만, 최종 90만명까지 갔다. 정말 깜짝 놀랐다. 해직 언론인들이 뭔가 센 방송을 한다는 소문이 난 덕도 봤을 텐데, 기대 이상의 반응이 오니까 죽기 살기로 하게 되더라.(웃음)
-첫 방송하고 자축 파티라도 했나.
인건비는 생각도 못하고 교통비 등 실제작비가 회당 300만원 가량인데, 연 2,500만원인 언론노조 민실위 예산에서 받아다 쓰는 처지에 파티는 무슨… 6개월간 회식 한번 안 했다. 초기에 과도하게 흥분하신(웃음) 시청자들이 '돈 걷어라'고 하고, 열혈 팬들 중에선 (더부살이 하는 언론노조 사무실로) 돈을 싸 들고 온 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뚜렷한 성과를 보여주지도 않은 상태에서 돈을 모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대신 물품 기증은 받았다. 야식배달이 줄을 이었고, 농사지은 감자, 과일도 보내주고, 정기적으로 밥을 해오시는 분도 있다. 일주일에 하루, 이틀 밤샘한다니 간이침대 보내주신 분도 있고.
-그런 반응에 무척 감동했겠다.
옳은 일을 했다는 뿌듯함도 있고 좋기는 한데, 이러다 영영 코 꿰이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었다. 복직은 무슨 복직이냐, 이 길로 죽 가라, 퇴로를 끊어야 새 인생이 열린다… 남의 일이라고 쉽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웃음)
-취재 거부나 권력기관의 압력도 있었을 텐데.
기존 언론사처럼 프로그램 내세워 섭외하고 그럴 수 없으니, 무조건 현장으로 찾아가 부딪쳤다. 취재의 8할이 '현장 박치기'였다. 디도스공격 취재할 땐 발로 뛰며 투표소 거리를 재고, 4대강 할 때도 강에 들어가 직접 재보고…. 나도 내일모레면 오십인데 쌍욕 듣고 밟히고 들려 나오고 이 짓을 계속해야 하나 싶기도 했다.(웃음) 디도스나 4대강, 강정 등은 다 알려진 이슈지만, 현장에서 부딪치며 거세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살아있는 뉴스를 보여주니 시청자들이 감동했던 것 같다. 주요 정치인들도 박근혜 빼고는 매복 인터뷰로 다 만났다. 그래도 압력도 소송도 당한 적 없다. 현장 중심의 사실보도를 했으니까.
-초창기에 비해 조횟수가 많이 떨어졌는데.
현재 유튜브 기준으로 회당 5만~6만, 팟캐스트, 다음TV 포함하면 10만 안팎이 본다. 평균 20만 정도이다가 4ㆍ11 총선 이후 이른바 '멘붕'(멘탈 붕괴)이 작동하면서 팍 꺾였다. 첫 회에 90만까지 오르니 간덩이가 부어서 떨어졌다 어쨌다 하지만, 10만도 적은 수가 아니다. 더구나 시청자의 60,70% 가량이 3040세대여서 입소문, SNS 등을 통한 확산성도 강하다. 하반기에 정치적 관심이 더 높아지면 몇 십만 단위로 금방 올라갈 거라고 본다.
-기부 회원 모집은 잘 되어가나.
1차 목표가 3,000명인데, 열흘 만에 2,200명이 가입했다. 월 1만원씩 총 3,000만원 정도면, 새로 충원할 프리랜서 취재진 3명에게 인건비를 줄 수 있다. 1만명 정도 되면 제작진 7,8명에게 모두 급여를 주는 안정적인 체제가 구축된다. 상당한 시일이 걸릴 거다. 참여연대 회원이 1만5,000이라는데, 당장 1만명 모으면 그야말로 '사건'이다.(웃음)
-비영리법인화 이후 궁극적인 모델은 뭔가.
미국의 '프로퍼블리카'(ProPublica) 같은 비영리 탐사전문 매체가 궁극적 목표다.(월스트리트저널 편집국장 출신인 폴 스타이거가 2007년 창간한 프로퍼블리카는 광고없이 100% 독자들의 기부금으로 운영된다. 30여명의 베테랑 기자들이 길게는 1년 이상 취재해 사흘에 한 건 꼴로 기사를 낸다. 2010년 인터넷 언론으로는 최초로 퓰리처상을 탄데 이어 2011년에도 연속 수상했다.) 사실 뉴스타파 시즌1은 매주 달리기하기에도 바빠 제대로 된 탐사보도를 시도하지 못했다. 프로퍼블리카처럼 우리도 큰 손의 '통 큰 기부'가 뒷받침되면, 현역 베테랑 언론인들을 끌어올 수 있을 거다. 당장은 어렵지만 회원 1만명 정도가 모이면 연봉 3,000만~4,000만원 정도는 줄 수 있다. 일단은 1차 궤도에 올리는 것까지 책임지고, 저는 손을 뗄까 한다. 저처럼 (복직을 염두에 둔) 양다리 걸치기나 운동 차원에서 희생하는 사람 말고, 철학과 소신, 능력을 갖춘 이들이 전업할 수 있는 구조로 가야 한다.
-본인이 새로운 실험의 주역이 될 수도 있지 않나.
MBC로 돌아가 20년 몸 담으며 봉洋萬?둥지에서 정년을 맞고 싶다. 주춧돌 놓은 사람 있으면 또 다른 사람이 나와 1층 쌓고, 2층 쌓고 해야지, 맨날 하던 놈만 해서는 관성이 생기고 고리타분해진다. 그렇게 해선 사회가 절대 바뀌지 않는다.
-복귀 얘기 나온 김에 개인사를 좀 짚어보자. 어떻게 PD가 됐나.
원래는 작가를 꿈꿨다. 대학 3학년 때까지 문학동아리 하고 습작도 했는데, 등단도 쉽지 않고 잘 안 풀리면 먹고 살기 힘들겠다 싶더라.(웃음) 졸업하면 대개 고시 아니면, 대기업이나 언론사 입사하던 시절인데, 자유롭고 재미있을 것 같아 PD를 택했다.
-노조위원장은 내가 하겠다, 손 들고 나선 건가.
원래 나서기 싫어하고 반장도 한번 안 해봤는데, 제일 크게 출세한 게 노조위원장이다.등 떠밀리긴 했지만, 구질구질하게 생각해보겠다, 안한다 그러고 싶지는 않더라. 임기가 2009, 2010년 2년인데, 촛불집회 여파로 정신 못차리던 이명박 정권이 대반격에 나서 MBC는 반드시 손보겠다고 벼르던 때였다. 위원장은 물론 노조 집행부 모두 해고를 각오하고 나섰다. 처음 지역MBC에선 체구도 작고 약해 보여 걱정했다고 하더라.(웃음) 2010년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해고됐는데, 어차피 각오한 일이고 김재철 사장이 기껏해야 2년 정도면 떠날 거라고 생각해 덤덤했다. 여전히 상식이 언젠가는 이긴다는 확신이 있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후회해 본 일은 없나.
지난 삶에 대해 절대 후회하지 말자고 끊임없이 자기세뇌를 한다.(웃음) 돈이나 출세 욕심에 주저하지 않고 저 스스로에게 떳떳하게 살았으니 얻은 게 더 많다. 개인의 자유를 잃은 것이 아쉬울 뿐이다. 빨리 내 사적인 영역으로 돌아가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고, 가고 싶은 곳에 가고, 맛있는 거 혼자 먹어도 보고 그랬으면 좋겠다.
-복직해서 꼭 만들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다면.
톡 까놓고 밑바닥까지 드러내 보여주는, 진짜 웃기고 무지 재미있는 시사토크쇼. 고스톱에서 막판에 자기 패 까서 보여주고 '쇼당' 하지 않나. 제목도 '쇼당 토크쇼' 이렇게 하고 싶은데, 일본말이라 안될 테고.(웃음)
-뉴스타파 노종면 앵커의 후임은 정했나.
노종면 앵커는 전 방송사를 통틀어 손에 꼽을 만한 탁월한 진행자다. 그래서 고민이 많았는데, 참신한 인물을 발탁했다. 시즌2 시작 1주일 전쯤 공개할 예정이다.
-참신한 인물이라면, 혹시 여성인가.
음… 그렇다. 프로그램 진행 경험이 없지만 잘 적응하리라 믿는다. 열심히 트레이닝 중이다.
-이번 파업 중 해고된 MBC 최승호 PD 등도 시즌2에 합류하나.
실은 최 선배에게 앵커 제안을 했었다. PD수첩 등으로 워낙 유명한 분이니 노 앵커 못지않게 강단있게 진행할 거라고 다들 추천했다. 그런데 얘기를 꺼내니 기겁을 하며 제발 살라달라 하더라. 최 선배는 MBC에서 할 일이 더 많고, 해고무효 소송 하면 100% 이기는 상황이어서 강권하지 않았다. 노조가 파업을 접고 복귀하긴 했지만, 김재철 사장이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은 MBC를 복구하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릴 거다. 김 사장이 곧 나가겠지만, 정말 MBC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고 나가는 거다.
-시즌2는 어떻게 달라지나.
기본 포맷은 유지하되 심층탐사보도에 힘을 쏟을 계획이다. 필요하면 3회 연속보도를 한다든가, 프로그램 전체를 한가지 이슈의 다큐로 내보내든가. 노동 현장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루고, 인터뷰는 이슈메이커 중심으로 해서 매체력을 강화하려 한다.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꼭지도 하나 넣어보고 싶다. 칼럼 담당자도 지상파 방송 현업 언론인 중에서 구했다. 그분은 지금 드디어 뉴스타파에 발탁됐다며 엄청 흥분해 있다.(웃음)
-노조들이 모두 파업을 접고 회사 안에서 공정보도 투쟁을 하기로 했다. 기존 언론들이 제 역할을 하게 된다면, 뉴스타파의 영향력이 그만큼 줄어들 수도 있는데.
공정보도가 이뤄진다면 환영이지만, KBS나 MBC가 당장 그럴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또 궁극적으로는 결과물로 승부하면 된다. 프로퍼블리카를 보라. 기존 언론사에서 잘 하지 않는 것, 더 사회적 파장이 큰 기획을 하면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끝으로 대한민국 언론인들에게 한 말씀 해달라.
아무 생각없이 사는 언론인들에겐 별로 할 말이 없고, 힘든 시기에 그래도 언론의 갈 길을 함께 고민했던 동지들에게 힘내자, 고 말하고 싶다. 작은 싸움에서 이길 수도 질 수도 있지만 우리가 절대 잘못 살지 않았다, 고 위로하며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다. 자신의 양심을 지키고 싸워야 할 때 싸운 것은 평생을 두고 자랑스러워 해도 좋을 아름다움 일이다.
이희정선임기자 jay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