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샤(28)는 휴대전화 벨이 울리면 칭얼대는 두 살배기 아기를 무릎에서 내려놓고 부리나케 달려간다. 남편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다. 지난해 5월 남편이 시리아 반군인 자유시리아군(FSA)에 합류하면서 아이샤는 아이 셋을 데리고 국경을 넘어 요르단으로 건너왔다. 휴대전화는 난민촌에 있는 자신과 남편을 이어주는 유일한 끈이다.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북쪽으로 90㎞ 떨어진 시리아 접경 람타에는 시리아인 난민촌이 있다. 지난해 3월 시리아 유혈사태 발생 후 요르단으로 건너온 난민은 14만명에 달한다. 유엔난민최고대표사무실(UNHCR)은 이들 중 75%가 여성과 어린이인 것으로 추정한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최근 시리아에서 남편들이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과 싸우는 동안 반군의 아내들은 난민촌에서 또 다른 싸움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의 남편에 대한 그리움은 절절하다. 난민촌에 함께 사는 아이샤의 여동생 나디아(25)는 "아이들과 내가 여기에 온 이유는 남편이 우리를 걱정했기 때문인데 나는 죽더라도 그와 함께 있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샤도 "언젠가 한 베개를 베고 얼굴을 마주보며 잠들 날이 올 것"이라는 말로 남편과의 전화를 마친다. 여자들끼리 모여 남편과 다시 만날 때 어떤 속옷을 입으면 좋을지 의논하고, 남편이 국경 너머에서 휴대전화로 보내온 낯뜨거운 문자를 자랑하기도 한다. 나디아는 "남편을 빨리 보고 싶다"며 "그가 돌아왔을 때 예쁘게 보이기 위해 살을 빼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샤와 아이들은 먹을 게 없어 끼니를 거르기 일쑤다. 아이샤는 작은 창 하나만 있는 방에서 아이 셋을 돌보고 손빨래와 청소를 하는 것으로 하루를 보낸다. 나디아는 시댁 가족 등 17명과 방 두 개를 나눠 쓴다. 식량이 부족한 난민촌에선 샴프와 화장지 같은 생필품도 사치품이다. 한 주부는"아기가 아침부터 기저귀 하나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전적으로 종교ㆍ자선단체 등의 기부에 의존하고 있다.
난민촌 주부들이 겪는 가장 큰 고통은 두려움이다. '혹시 남편이 잘못되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유혈사태가 발생한 후 1만7,000여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시리아에선 요즘도 매일 수십여명이 죽는다. 아이샤의 남편은 '순교자가 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아이샤는 자신의 가족만 불행을 피해갈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디아의 시누이인 루바(25)는 남들보다 빨리 요르단에서 남편과 재회했지만 반군활동을 하는 동안 수감생활을 한 남편은 이미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루바는 "감옥에서 나올 때 남편의 몸은 멍투성이였다"며 "말수도 줄었고 혼자 있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알아사드 정권에 대한 주부들의 분노는 남편 못지 않다. 야스민은 "다마스쿠스 궁전에 쳐들어가 알아사드를 파멸시킬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시리아에서 총알과 약품을 나눠주며 반군을 도운 경험이 있는 자밀라는 멀리서 전쟁을 지켜봐야 하는 것에 무력감을 느낀다. 그는 "남편에게 다시 돌아가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있다"며 "죽음은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홍민지 인턴기자 (상명대국제통상학과 4) minji8905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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