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의 경제학/토마스 셰틀라체크 지음ㆍ노은아 김찬별 옮김/북하이브 발행ㆍ527쪽ㆍ2만2000원
"오늘날 사람들이 경제학자로부터 가장 듣고 싶은 이야기는 언제나 그렇듯이 무엇이 옳으며 무엇이 그른가이다."(19쪽) 수량 경제학 지상주의 아래의 협애한 한국 경제학 풍토를 겨냥한 듯한 도입부의 명제다. 저자의 어법으로 치환시킨다면 이 책은 "모든 경제학은 본질적으로 선악에 관한 것이며, 선악의 관계에 대한 경제학"이다.
수학과 철학을 두루 아는 이 체코 경제학자의 책에는 규범경제학과 실증경제학 간의 끊이지 않는 충돌이 빚어진다. 체코의 경제학자이자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이 쓴 이 책의 출발은 신화학적이기까지 하다. 도입부에서는 길가메시 신화를 신성한 나무를 건축 자재로 만들어 원래 야생의 일부를 '노예화'한 것으로 해석한 뒤, 책은 아담 스미스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경제학 탐색의 여정에 나선다. 그는 경제학의 창시자 애덤 스미스가 저술한 <도덕감정론> 이 고대 그리스의 도덕 체계를 가장 탁월하게 설명했다고 설명한다. 선과 효용을 동일시하는 쾌락주의적 접근법이 과학으로서의 경제학에 길을 텄다는 것이다. 도덕감정론>
기독교를 '물질 세계의 영성'으로 파악하는 책의 논의는 문화인류학적이기까지 하다. 신약성서의 30가지 비유 중 19개가 경제적ㆍ사회적 맥락을 갖는 것처럼 서양 문명의 주요 축인 기독교의 물질관도 서양의 경제관 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 것이었다. 가까이는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은행과 대기업의 파탄을 막기 위해 필연적으로 '불공정한' 채무 면제 제도를 도입해야 했던 것은 '속량'이라는 기독교적 가르침이 현대에까지 작동한 결과로 본다.
"남들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기독교의 금언은 게임이론 중 보복전략으로 치환될 수 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손' 등 경제학에 커다란 영감을 작용했던 성경을 일컬어 저자는 "경제 독본으로서의 성경"이라고까지 한다.
후반부에서는 그러나 신의 섭리가 사리지고 인간의 무한 욕망이 주재하는 '불경스러운 사상들'의 모습을 소설 등 문학작품과 인문학 서적을 다양하게 인용해 가며 그려낸다. 이 책이 경제학 서적이라는 사실을 잠깐 잊게 만들 정도다.
경제학의 관점이 "수학에만 초점을 맞추고 사회에 대한 폭넓은 사회과학적 접근법을 종종 도외시한 채 경제와 전체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는 척하며 심지어 미래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라는 그의 지적은 어떤 경제학자들에게는 저주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불과 24세에 하벨 대통령의 경제 자문으로 발탁돼 세인의 주목을 받은 그는 현재 체코의 대표적 은행인 CSOB의 수석거시경제전략가를 맡아 체코 경제를 이끌고 있다. 지난해에는 '유럽을 이끄는 젊은 리더 4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경제학 이야기를 하면서 전통 우화에서 밀란 쿤데라 소설까지 인용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체코 사람이어서라기보다 박람강기한 인문학적 소양을 지녔기 때문일 게다. 경제학과 인문주의의 흔치 않은 통섭을 본다.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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