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시 닮은 의사의 출사표 "나도 대한민국 대표팀입니다"
금빛 메달의 꿈을 안고 20일 영국 런던으로 떠난 대한민국 올림픽 대표선수단 안에 '닥터 메시'가 있었다. 제30회 런던하계올림픽 22개 종목에서 뛰는 우리 선수 245명의 건강을 책임지는 대표팀 주치의 서동원(49) 바른세상병원장이다. 개원가에서 올림픽 대표팀 주치의가 나온 것은 이례적이다.
그는 축구경기를 즐기고, 실제로 공도 잘 찬다. 무엇보다 프리메라리거인 아르헨티나 축구선수 리오넬 메시를 닮았다. 그래서 '닥터 메시'다. 출국을 이틀 앞두고 있던 '메시'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바른세상병원 옥상에서 만났다. 의료진과 환자들을 위한, 무엇보다 축구를 좋아하는 그가 즐기는 미니축구장에서다.
"전공의로 돌아간 각오로"
"이 축구장 짓는데 1억 원 넘게 들었어요. 옥상에 축구장 만든 병원은 아마 대한민국에서 여기밖에 없지 않을까요? 저뿐 아니라 병원 의료진과 직원들, 환자들이 마음껏 이용하는 공간입니다. 인조잔디도 깔았으니 3대 3 미니 축구경기나 간단한 운동 같은 재활치료도 할 수 있지요."
축구뿐 아니다. 야구, 배구 등 운동에 대한 그의 열정은 스포츠의학계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다. 남다른 스포츠의학을 하고 싶어 재활의학과 전문의가 된 뒤 다시 10년 아래 후배들과 함께 수련하며 정형외과 전문의 자격까지 땄다. 서 원장은 현재 국내 유일의 재활의학과, 정형외과 동시전문의(듀얼 보드)다. 태릉선수촌 의무봉사, 대한체육회 의무위원 활동도 열심이다. 최근 태릉선수촌 상근의사가 병가를 냈을 때 그가 역할을 대신했다.
펜싱 남현희 선수와 축구 박주영 선수, 농구 하승진 선수, 유도 김재범 선수, 역도 사재혁 선수 등 개원 후 8년 동안 서 원장의 손을 거쳐간 운동선수는 프로, 아마추어를 합쳐 700명이 넘는다.
그렇게 많은 선수를 치료했지만 올림픽처럼 큰 무대는 긴장이 안될 수가 없다. "지난 올림픽 때 주치의로 다녀왔던 의사들에게 실전에 필요한 조언을 구했지요. 들어보니 점심 거르는 건 허다하고 자정까지 밀려오는 선수들 한 명 한 명 챙기다 보면 마치 전공의(전문의 자격을 얻기 위해 임상훈련을 하는 의사) 때로 돌아간 듯하다더군요. 전공의 때요? 해는 지는데 일은 안 끝나는 삶이죠(웃음). 전공의 생활 오랜만에 한번 더 해볼 셈입니다."
올림픽 선수촌에는 전 세계 의료진이 공동으로 쓸 수 있는 의료장비, 도구, 약품 등이 갖춰진다. 하지만 다친 선수들이 한꺼번에 몰리다 보면 자칫 한국 선수가 필요한 치료를 받지 못할 우려도 있다. 그래서 서 원장은 관절을 부드럽게 해주는 주사제와 간단한 수술도구들, 휴대용 초음파 검사기 등을 따로 챙겼다.
"초음파는 정형외과 의사의 청진기라고 할 수 있죠. 인대나 힘줄, 근육 부상은 초음파가 있어야 제대로 진단할 수 있거든요. 이런 부상이 선수생명을 좌우하기도 하는 만큼 정확하게 진단하고 빨리 치료하는 게 중요해요."
런던올림픽은 '노 니들 폴리시(No-needle policy)'를 구호로 내걸고 있다. 도핑(운동선수가 좋은 성적을 내려고 약을 먹거나 주사하는 부정행위) 감시 규정이 더욱 엄격해졌다는 소리다. 진단이든 치료든 꼭 필요한 경우라도 주사를 놓으려면 올림픽선수촌 의무본부에 먼저 신고부터 해야 한다. 신고된 내용이 없는데 선수의 몸에 주사자국이 발견되면 그 자체를 도핑 위반으로 처리한다. 출국 전 이런 규정을 면밀히 확인해두는 것도 대표팀 주치의의 몫이다.
커지는 골반, 튀어나오는 무릎
수많은 운동선수를 살피다 보니 종목별로 어느 신체 부위가 취약한지도 서 원장은 잘 안다. "펜싱은 한쪽 동작이기 때문에 골반에도 한쪽으로만 무게가 실려요. 실제로 골반과 치골 부위를 X선 촬영해봤더니 한쪽이 2.5배나 커져 있던 펜싱 선수도 있었어요. 축구 선수 무릎뼈가 앞으로 튀어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운동으로 많이 쓰는 부위의 성장판을 힘줄이 계속 당기면서 커지는 거에요."
운동선수의 부상은 증상만으로는 골절인지 아닌지 의사조차 헷갈릴 때가 많다. 같은 증상이라도 통증을 호소하는 정도가 보통 사람보다 덜하기 때문이다. 힘든 훈련을 견디면서 그만큼 아픔에 무뎌졌기 때문이다.
"태릉선수촌에서 한번은 태권도 국가대표 선수가 손가락이 삔 것 같다면서 찾아왔어요. 아주 많이 아파하는 것 같진 않았는데, 손가락 상태를 보니 좀 의심스럽더군요. 그래서 X선 촬영을 해봤죠. 역시나 골절이었어요."
그렇게 고된 훈련을 참아온 선수들을 곁에서 지켜본 서 원장은 꼭 다치지 않더라도 선수들이 주치의를 자주 찾아오길 바란다. "주치의에게 의학적인 조언을 얻으면 더 좋은 컨디션으로 경기를 치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거든요."
의사축구대표팀 공격수
알고 보니 서 원장도 국가대표 선수로 뛴 적이 있었다. 해마다 열리는 세계의사월드컵에 출전한 대한민국 의사축구 국가대표 1호였다. "2006년 독일월드컵 직전 1주일 동안 10여 개 나라가 참가하?세계의사월드컵이 열렸어요. 그 해에 한국이 처음 출전했죠. 전 공격수로 뛰었고요. 당시 1위는 브라질이 차지했어요. 브라질은 의사들도 축구를 잘 하던데요(웃음). 우리나라요? 꼴찌에서 두 번째 했습니다."
서 원장의 아들도 아버지를 닮아 열혈 축구팬이고, 의대생이다. 최근 아버지와 아들은 런던에서 함께 '역사적인' 경기를 지켜보며 추억을 만들었다. "지난 설 연휴 때였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아스널의 경기가 런던에서 열렸는데, 당시 맨유에 박지성이, 아스널에 박주영이 있었거든요. 세계적인 축구팀에서 우리 선수끼리 대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가 있나요? 아들과 함께 부랴부랴 런던행 비행기표를 구해 날아갔죠. 후반전 끝나갈 때쯤 드디어 두 선수가 함께 경기장에 나온 거에요. 아들이랑 얼싸안고 얼마나 환호했는지 몰라요."
박주영 선수는 특히 2005년 서 원장이 대표팀 주치의를 맡았던 세계청소년 월드컵에도 출전했던 인연이 있어 더 반가웠다. 두 선수 이야기를 하며 목소리까지 점점 높아지는 서 원장에게 그렇게 축구를 좋아했으면서 왜 의사의 길을 택했냐고 물었다.
"그러게요. 축구를 잘 해서 박지성 선수처럼 뛰었으면 더 행복했을 텐데(웃음). 대신 올림픽 대표 의사로 뛰면서 우리 선수들 몸 하나는 제가 든든하게 지켜줄 겁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 이번 올림픽 주치의 3명…스포츠의학 경험이 필수…별도 보상 없는 '의료 봉사'
런던 올림픽 한국선수단 주치의는 서동원 바른세상병원장 외에도 박원하 삼성서울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고정아 태릉선수촌 상근의사(가정의학과)가 함께 맡는다.
올림픽 대표팀 주치의는 대한체육회 의무분과위원회가 후보를 추천하고, 이사회가 최종 선정한다. 이번 런던올림픽 주치의에는 총 8명이 후보에 올랐다. 박원하 대한체육회 의무분과위원장(삼성서울병원 재활의학과 교수)은 "스포츠의학 진료 경험이 중요해 대한체육회 의무위원이나 태릉선수촌 상근의사 중에서 주로 선정된다"고 말했다.
주치의는 올림픽 경기가 시작되면 아침마다 회의를 열어 그 날 경기 일정을 확인하고 각자 선수들을 보살필 종목을 나눠 맡는다. 종목별 규정이나 선수별 상황에 따라 주치의가 경기장까지 동행하는 경우도 있고, 물리치료사나 간호사만 가는 경우도 있다.
올림픽이 종목과 관계없이 전체 선수를 대상으로 의료진을 배치하는 반면, 아시안게임은 각 종목마다 의사나 물리치료사가 동행할 수 있다. 훨씬 많은 의료진이 참가한다는 얘기다. 박 위원장은 "선수와 임원 수 비율 규정이 아시안게임보다 올림픽이 훨씬 엄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올림픽 기간 내내 선수와 함께 뛰지만, 대표팀 주치의에게 돌아오는 보수는 체재비가 전부다. 사실상 봉사활동인 셈이다. 그럼에도 대표팀 주치의에 매력을 느끼는 의사가 많다. 4년마다 한번씩 오는 기회인데다 스포츠의학을 직접 다루는 진료과가 정형외과나 재활의학과, 가정의학과 등 몇 안 되기 때문이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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