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할머니들의 참상을 고발한 국내 소설이 일본어로 번역돼 출간됐다.
동화작가 이규희(60)씨가 2010년에 낸 <모래시계가 된 위안부 할머니> 가 18일 일본 나시노키샤 출판사에서 일본어판으로 나온 것이다. 이 작가도 이를 기념해 내용과 제목은 그대로 두고 판형과 표지디자인을 바꿔 같은 날 자신의 책을 재출간했다. 일본에서 위안부 피해자 관련 보고서들이 나온 적은 더러 있지만, 이들의 문제를 다룬 소설이 일본어로 번역 출간되기는 처음이다. 모래시계가>
<모래시계가 된 위안부 할머니> 는 수요집회에 참석, 일본 대사관을 향해 팔을 걷어붙이고 욕을 퍼부어 유명세를 탔던 황금주 할머니의 증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청소년용 소설이다. 대학생 청년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할뻔한 소녀(은비)가 '귀신할머니'로 불리는 황 할머니 옆집으로 이사 온 뒤 꽃다운 나이에 성 노예로 끌려가 유린당한 할머니와 우정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다소 무거운 주제인 위안부 문제를 청소년의 눈높이에서 풀어냈다. 이 작가는 19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어린 독자들이 그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는 위안부 할머니 '사건'을 번역된 책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모래시계가>
번역은 일본어 교사를 하다 최근 정년 퇴직한 야스다 히세씨가 맡았다. 교직 재직 당시에도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던 야스다씨는 서울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에 자주 참석했으며, 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피해 증언대회를 가질 때면 일본 내 안내를 도맡았다. 이 작가는 "지난해 7월 야스다씨가 나시노키샤 출판사 사장(하다 유미코)과 서울로 찾아와 '<모래시계가 된 위안부 할머니> 를 일본어로 번역, 피해 여성의 삶을 조명하고 전쟁의 참상을 일본 사회에 알리고 싶다'고 제안했고, 흔쾌히 응했다"고 밝혔다. 모래시계가>
해방 후에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을 정도의 부끄러움 속에서 살았지만 역사의 산 증인으로 나선 한 위안부의 삶이 소설로 일본에 소개된 데에는 이희자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공동대표의 힘이 컸다. 이 대표는 "2010년 10월 도쿄에서 열린 피해자 증언대회에서 평소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야스다씨에게 책을 건넸는데, 몇 달 뒤 '일본어로 직접 번역을 해보고 싶다'는 답이 와 이 작가를 연결해줬다"며 "일본어판 출간을 계기로 위안부 문제를 보는 일본 내 분위기가 변화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이 작가는 "일본어판 출간은 30여년 작가 생활에서 제일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모래알이 다 빠져나가 텅 비어버린 모래시계처럼 이분들도 하나 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겠죠. 일본의 사과가 하루라도 앞당겨 진다면, 그래서 한 분이라도 더 편안히 눈을 감게 된다면 좋겠습니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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