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무부가 조기 공개한 대한항공(KAL) 858편 폭파사건의 비밀 외교문서에는 사건 초기 한국의 대응에서 주범 김현희(50)가 사면되기까지 상황이 '외교'의 이름으로 소상히 기록돼 있다. 특히 북한 범행을 입증할 새로운 증거들과 북한의 의혹 제기에 미국이 신속하게 대응하는 장면들도 발견된다. 김현희는 한국의 발전상을 접하고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조사 8일만에 눈물의 자백을 시작했다고 외교문서는 적고 있다.
침착한 초기 대응
사건 초기 북한 개입 정황이 속속 제기되자 미국은 한국이 극단적인 대응(보복)에 나설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1987년 12월3일 정부 담화문에 '보복은 고려할 가치가 없다'는 내용을 포함시키도록 조치했다(문서번호 E3). 최광수 외무장관은 12월4일 사건 배후로 북한이 의심되지만 전 대통령은 증거가 확정적이지 않다는 반응이라고 전했다(E11). 주한 미 대사관은 "한국 정부가 신중하고 시의 적절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평가했고(E6), 제임스 릴리 주한 미 대사는 "한국 정부의 침착한 대응이 놀랍다"고 워싱턴에 보고했다(E11).
한국도 미심쩍어 한 범행동기
사건 3일 뒤인 12월2일 최 장관과 실무진은 북한이 서울 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 범행했다고 확신했다. 이들은 당시 대선에서 여당 노태우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에 평양이 당혹스러워 하겠지만, 북한은 원래 정치적 비용에 관계없이 테러를 자행한다고 지적했다(E2). 최 장관은 북한 강성파의 복귀를 알리는 신호라는 해석도 했다(E11). 그러나 12월4일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이 서울 올림픽이 1년 남은 시점에 여당 후보에게 유리한 테러를 자행한 이유에 대해 만족할 만한 대답을 갖고 있지 못하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북한이 한국의 정치불안을 증폭시키기 위해 노태우 후보의 승리를 원했을 수 있다는 가정을 하기도 했다(E7).
미국 자체 증거 확보
미 국무부는 '프레스 가이드'에서 김현희의 자살기도 등 범행 수법, 위조여권 사용, 독자 확보한 증거 등을 이유로 북한에 KAL기 폭파 책임이 있다고 규정했다(E41). 특히 다양한 기관이 확보한 증거를 근거로 북한 소행이 아닐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 미국은 아웅산 테러, 해외극단주의 세력에 대한 무기ㆍ자금지원 등을 근거로 88년 1월20일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했다(A2). 미국은 자체 수집, 확보한 정보를 구소련, 일본 등과 공유했으며, 구 소련이 (지금의 중국처럼)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위치에 있기 때문에 추가도발 방지를 도울 것으로 판단했다(E26).
잠비아 대사의 의혹제기와 미국의 반박
마인자 초나 주중 잠비아 대사는 88년 1월18~25일 평양에서 북한 외무성 부상 등과 논의한 뒤 "김현희 진술을 넘어선 명명백백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며 "북한이 이 테러로 이익을 얻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김현희가 한국에서만 사용하는 '티비(TV)''속죄''약주병' 이란 단어를 사용한 사실을 언급하며 '김현희 가짜'라는 의혹도 제기했다(E31). 북한이 잠비아 대사를 통해 KAL기 사건의 신빙성 문제를 제기하자, 미국은 독자 수집한 증거 중 2개를 제시하며 반박했다. 먼저 해외방송청취기관(FBIS)에서 분석한 김현희의 말이 북한 말로 입증됐다고 밝혔다. 또 미국이 통제하는 상황에서 김현희에게 (북한 고정간첩) 26명의 사진을 제시했고, 이때 김은 KAL기 폭파 직전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접촉한 2인,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만난 1인 등 3명의 사진을 정확히 골라냈다고 밝혔다. 김현희가 지목한 3장의 사진 속 인물은 당시 현지에서 활동하던 북한 요원들이었다. 미국은 이런 사실이 김현희가 북한을 위해 일한 부인할 수 없는 증거라며, 북한에 이 사실을 알려주라고 잠비아 대사에게 요구했다(E54).
전두환, 올림픽 위해 보복 자제
사건 조사결과 발표를 하루 앞둔 88년 1월14일 릴리 주한 미 대사는 전 대통령과 환담했다. 전 대통령은 "강압 수단 없이 김현희 자백을 받아냈다"며 "그를 63빌딩에 데려가고, 옷을 선물하고, 한국의 실제 모습을 보여줘 놀라게 했다"고 말했다. 릴리 대사가 "북한 소행으로 드러났는데도 보복하지 않을 것이냐"고 묻자, 그는 "김일성ㆍ정일 부자는 정신적인 병자들"이라며 "군사보복이 정당한 선택이고, 이스라엘이라면 벌써 그리 했겠지만, 이 시점에서 보복은 배제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 대통령은 이어 "한국이 정권 교체기에 있고, 올림픽을 치러야 한다"면서 "한국의 입장은 올림픽 이후에도 지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후 릴리 대사는 "전 대통령이 단기적으로 어떤 군사작전도 감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워싱턴에 보고했다(E23). 미국은 한국 정부의 차분한 대응을 반기며 한국 정부가 추진한 KAL기 사건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및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회부 등을 적극 도왔다(E39, E40).
8일만에 입 연 김현희, 첫 한국말은 "미안합니다"
박수길 당시 외무부 차관보의 미국 측에 대한 비공개 브리핑에 따르면 87년 12월15일 서울로 압송된 김현희는 식사와 진술을 거부했다. 사흘 뒤 처음으로 햄버거를 달라고 중국말로 말했으나 한국말 조사에는 계속 응하지 않았다. 그는 "나는 중국 아무르 지역에서 태어났으며, 모친의 재가로 고아가 됐고 87년 마카오에서 (공범) 김승일을 만나 양녀가 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북한 훈련캠프에서 교육받은 대로 침상정리를 하는 버릇이 발견되면서 거짓진술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는 중국 전통에 무지했고, 중국말 억양은 아무르 지역의 것과 달랐다. 김현희는 또 TV 등을 통해 엿본 한국인의 삶이 교육받은 내용과 극적으로 다르자, 자신이 테러의 도구였음을 인식하게 된다. 서울도착 8일만인 12월23일 오후 7시 그는 갑자기 여성조사관의 가슴에 안겨 눈물을 글썽이며 "미안합니다"라고 처음으로 한국말을 했다. 그리고 테러 행각을 자백하기 시작했다(E42).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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