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무부가 지난달 11일 대한항공(KAL) 858편 폭파 사건의 외교문서 57건을 홈페이지에 공개한 배경을 놓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57건의 비밀문서가 국무부 자체 심사에서 지정된 비밀해제 시점보다 최대 11년이나 앞당겨 조기에 공개됐기 때문이다.
공개된 외교문서의 비밀해제 심사는 1998년 8월과 10월, 2008년 6월 세차례 진행된 것으로 문서에 나와 있다. 심사 이후 각 문서 하단에는 비밀해제 시기, 즉 일반인에 대한 공개를 2019년 3월에서 2023년 1월까지 단행하라는 지시가 기록돼 있다. 일부 문건에는 아예 공개시기가 없어 추가 심사가 이뤄질 것임을 예고했다. 국무부가 예정된 공개 시점을 번복할 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란 추정이 나올 수밖에 없다. 더구나 미국은 이전까지 정보공개 청구 등을 통한 KAL기 관련 외교문서 공개요구에 대해 민감한 내용이 빠진 10건 미만을 공개했을 뿐이다.
이번 공개는 미 행정부 규정에 비춰봐도 예외적이라고 할 수 있다. 비밀문서 공개규정에 따르면 통상 25년이 지나면 의무적으로 공개여부를 검토하고, 그 결과에 따라 25년 만에 비밀을 일괄 해제할 수 있다. 그러나 공개된 57건의 문서를 살펴보면 국무부가 자체 부여한 문서 번호에서 빠진 숫자가 상당수 발견된다. 결국 아직 공개되지 않은 문서들이 다수이기 때문에 이번 공개는 일괄 비밀해제에 해당하지 않는 셈이다. 또 문서작성 시점은 물론 KAL기 사건이 발생한 지 만 25년도 지나지 않았다.
통상적인 경우라면 이처럼 서둘러 공개할 이유가 없을 것이란 정황은 또 있다. 그 동안 미국이 비밀 해제한 한국 관련 외교전문은 아직 70년대의 것에 머물러 있다. 이 때문에 이례적일 수밖에 없는 미국의 이번 조치는 한국에서 KAL기 폭파 사건의 의혹들이 다시 거론되자 전격적으로 이뤄진 것이란 추정을 낳는다. 비밀 해제된 문서 중 KAL기 폭파가 북한의 테러임을 보여주는 새로운 증거들이 포함된 것도 이런 추론에 무게를 싣는다. 공교롭게도 미국의 문서 공개를 즈음해 한국에서는 참여정부의 '김현희 가짜 조작설' 등이 폭로 형식으로 제기되고 있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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