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1호기와 관련된 자료를 읽다보면, '고리 1호기처럼 30년의 수명이 만료되는 원전이 속속 나온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고리1호기의 재가동 허용을 결정했다' 등의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수명이 만료된 원자로를 재가동하기로 결정했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수명이란 기계나 시스템, 시스템의 구성요소가 사용을 시작한 후 규정된 기능을 상실해 폐기될 때까지의 기간을 의미한다.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사람의 수명과 동일하게 기능이 상실돼야 구체적 기계의 수명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고리1호기의 30년 수명은 발전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수명을 평가하는 수명예측결과를 의미한다. 30년은 과학기술이 발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최소한으로 설정된 운영허가기간이고, 30년 사용 후 남은 수명을 예측하는 잔여수명평가를 다시 실시해야 하는 시점을 의미한다.
고리1호기의 30년 수명은 원전의 안전성을 검사받아야 할 시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각국의 제도에 따라, 원전의 종류에 따라 기간이 상이하게 나타난다. 고리1호기는 1978년 30년간 운영허가를 받은 후 2007년 10년간 계속운전을 승인받았는데, 고리1호기와 동일한 참조원전인 미국 위스콘신주 키와니 원전은 74년 40년간 운영허가를 받은 후 지난해 20년간 계속운전을 승인받았다. 따라서 수명이란 운영허가기간 또는 안전검사시점에 불과하고, 수명연장이란 운영허가기간의 연장 또는 안전재검사시점을 의미한다.
원자력안전위가 4일 고리1호기 원자로 재가동 허용을 결정한 건 이미 2017년까지 계속운전을 승인받았기 때문에 수명연장과 관련이 없다. 원자력안전위는 3월 12일 고리1호기 정비기간 중에 발생된 12분간의 전력공급 중단사태와 이를 은폐한 사건을 이유로 원자로 사용을 중지하도록 명령했다. 이에 따라 원자로의 안전성 검사 후 원자로의 폐쇄조치 또는 사용중지해제 조치를 결정해야 한다. 고리1호기처럼 운영기간이 연장된 경우뿐만 아니라 최초 운영허가기간 중인 경우라도 사용중지명령사유가 발생하고 사용중지명령이 내려지면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과정이다. 자동차, 선박, 아파트도 갑자기 안전성에 이상이 발생되면 사용검사 또는 안전검사 등을 받아야 하는 것과 동일하다.
사용중지명령은 원자로의 안전성에 문제되는 부분이 보완되면 해제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리1호기에 발생된 전력공급 중단사태는 직접적으로 비상디젤발전기에 설치되어 있는 공기공급밸브의 고장 때문이었고, 신규로 이동형 디젤발전기를 추가로 설치하는 등으로 문제점이 해결되었다. 이로써 원자로 자체의 안전성이 확보됐기 법적으로 사용중지명령 해제는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정책적으로도 안전성이 확보된 원자로에 대한 계속된 사용중지는 국가적 재원의 낭비일 뿐만 아니라 여름철 전력 수급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종사자의 운영미숙과 사건 은폐는 원자로의 안전성과 직접적 관련성이 없지만 언제든지 원전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
사실 원전 재가동에 대한 국민적 우려는 원전 종사자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원전 관련 기술적 이해가 낮은 국민 입장에선 원전에 대한 불안감을 원전 종사자들의 탁월한 실력과 높은 도덕적 책임에 의지해 해소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고리1호기 전력공급 중단 사고에 대한 은폐, 원전부품에 대한 납품비리 등으로 원전 종사자들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바닥에 떨어져있다. 이런 상황에서 고리1호기 사용중지명령에 대한 해제 조치가 이루어졌으니, 일부 국민들의 반대도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결국 원전 종사자의 신뢰 회복이 모든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이다. 신뢰가 정직과 헌신에 의해 생긴다는 점을 고려하면 원전 종사자에 체화된 정직과 헌신이 원전과 대한민국을 살리는 길이다.
정승윤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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