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 기생충이 할리우드산 거미인간을 물리쳤다. 13일 만에 350만 관객을 모은 영화 '연가시'의 흥행에 충무로도 놀라고 있다. 이달 5일 개봉한 '연가시'는 17일까지 348만1,448명을 모았고 개봉 3주차 평일인 이날 하루에만 12만여명을 동원했다. 토요일인 7일 하루를 빼곤 줄곧 1일 관객수에서도 1위를 달리며 한 주 앞서 개봉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을 2위로 끌어내렸다.
영화는 곤충 몸에 기생하는 길다란 기생충을 소재로 한다. 연가시는 곤충의 몸에 침투한 뒤 신경전달물질을 통해 곤충의 뇌를 조종해 물에 뛰어들어 죽게 한다. 영화에는 사람에 기생하는 가상의 변종 연가시가 등장한다.
영화의 흥행엔 살인 기생충이라는 소재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2010년 여름부터 인터넷 게시판을 중심으로 퍼진 '곱등이 괴담'에 친숙한 15~25세 관객의 관심이 특히 높았다. '곱등이 괴담'은 주택가에 혐오스럽게 생긴 '곱등이'라는 곤충이 늘면서 치명적인 질병을 옮긴다는 것. 주먹만 한 곱등이가 터지면 그 안에 있는 연가시가 사람 몸 속으로 들어가 뇌를 파괴시킨다는 헛소문까지 나돌았다.
현실에 있을 법한 괴생물에 대한 두려움이 영화의 흥행을 부추긴 셈이다.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는 "영화 '에이리언'의 외계생명체는 실체가 없는 존재인 데 반해 연가시는 실존하는 기생충이어서 관객들이 더 크게 공감하는 것 같다"고 했다. 리베이트 받는 의사, 헐값에 인수한 기업을 비싸게 팔아먹는 외국계 펀드회사 등 현실세계의 '불편한 진실'이 영화적 재미를 높였다는 분석도 있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 '도둑들' 등 국내외 화제작에 앞서 개봉한 배급 전략도 주효했다. 멀티플렉스 체인 CJ CGV의 전략미디어마케팅팀 김대희씨는 "10~30대 관객들이 여름에 보고 싶어 하는 속도감 넘치는 재난 영화와 호러 영화의 성격을 갖춘 데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외엔 뚜렷한 화제작이 없던 시기여서 흥행에 성공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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