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런던 올림픽 남자 육상 100m에 출전하는 라이언 베일리(23)는 일반 선수들과 달리 파란만장한 인생을 겪었다. 어려운 가정 환경 속에 어릴 때 학교를 그만두고 조직폭력배의 길을 걸었고, 조직폭력배 생활을 청산하는 과정에서 칼로 등과 어깨를 세 차례나 찔리는 등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 우여곡절 끝에 고등학교로 다시 돌아가 축구 선수로 활약했다. 빠른 스피드와 유연한 몸을 자랑하던 베일리는 육상부에 차출돼 본격적인 '스프린터' 수업을 받았다.
영국 버밍엄의 미국 대표팀 훈련 캠프에서 마지막 담금질을 하고 있는 베일리는 18일(한국시간) A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아직도 내가 이 자리에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조직폭력배 생활을 계속 했다면 지금쯤 나는 감옥에 갇혀 있거나 죽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가끔 놀라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베일리는 어린 시절 미국 오리건 주에서 어머니와 함께 자동차 안에서 살았다. 어머니는 질병을 앓고 있었고, 아버지는 가족 곁을 떠났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조직폭력배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던 베일리는 어머니의 한 마디에 마음을 고쳤다. "어머니는 가장 아끼던 올림픽 기념 주화를 보며 '언젠가 너도 올림픽 무대에 서 있을 거야'라고 얘기해줬고, 항상 그렇게 믿고 있었다."
베일리는 엄청난 고통을 이겨낸 끝에 어두운 과거를 청산하고 더글라스 맥케이고에 입학했다. 198㎝, 81㎏의 우월한 신체 조건을 바탕으로 뛰어난 축구 실력을 자랑했다. 축구로 장학금을 받을 수도 있었던 베일리에게 육상은 쉬워 보였다. 학교 육상부의 기록을 자신이 경신할 수 있다고 자신만만했다. 당시 육상부 코치였던 존 파크스는 이 말을 전해 듣고 트랙을 도는 베일리를 지켜봤다. 파크스는 "얼음 위를 미끄러지듯 달리는 자세가 부드러웠다"고 회상했다.
베일리는 파크스의 부름을 받고 육상 선수로 거듭났다. 그러나 순탄치만은 않았다. 운동화 사이즈가 너무 작아 훈련하다 엄지 발가락이 부러지기도 했다.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고등학교를 졸업한 베일리는 일리노이주의 렌드 레이크대에 진학했다. 베일리는 2009년 대학선수권대회 100m에서 우승하며 마침내 '스프린터'로서 두각을 나타냈고, 지난달 열린 미국 대표팀 선발전에서는 9초93으로 3위를 기록해 런던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베일리는 "아직까지도 주위에서 '육상선수가 될 거라곤 꿈에도 몰랐다'는 말을 듣고 있다"며 "그러나 나는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고 밝혔다.
김지섭기자 on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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