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자체 개발한 이동통신기술 '와이브로(휴대인터넷)'가 사실상 폐지수순을 밟게 됐다. 한국기술을 세계표준으로 만들겠다는 기대 속에 야심 차게 출발했지만, 잘못된 전망과 전략으로 결국 10년 만에 '사망선고'를 받게 됐다.
국내 최대 와이브로사업자인 KT는 17일 와이브로 서비스를 포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표현명 KT 개인고객부문 사장은 17일 서울 광화문 사옥에서 LTE전략 기자간담회를 갖고 "세계 시장에서 고립되지 않으려면 와이브로 대신 시분할 방식(TD)-LTE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세계에서 와이브로 장비를 만드는 곳이 중국 화웨이 밖에 없고 삼성전자도 이미 TD-LTE로 돌아섰다"며 "차세대 기술로 논의되는 와이브로 에볼루션도 전망이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사실상 와이브로 서비스를 중단할 수 밖에 없다는 의미다.
와이브로는 2002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삼성전자가 주축이 돼 개발한 것으로, 이동 중에도 빠른 속도로 데이터를 주고 받을 수 있는 무선인터넷 기술이다. 4세대(G) 이동통신 표준기술의 왕좌를 놓고 LTE와 경합을 벌였지만, 통신사업자들은 모두 LTE를 선택함에 따라 와이브로는 사실상 고사되고 있는 상태다.
와이브로가 처음 나왔던 2002년만해도 이동하면서 고속으로 데이터를 주고 받을 수 있는 기술은 속도측면에서 와이브로가 단연 우위였다. 당시까지 LTE는 제대로 기술개발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정부도 국책사업으로 와이브로를 밀었다.
하지만 와이브로는 새로운 통신망과 중계기 등이 필요해 투자비가 많이 든다. 반면 뒤늦게 출발한 LTE는 기존 3G 이동통신기술을 개선하는 방식으로 속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에 비용이 덜 든다. 그러다 보니 이동통신사들도 와이브로보다는 돈이 덜 드는 LTE로 급격히 기울 게 되었다.
업계 관계자는 "와이브로는 처음부터 수지가 맞기 힘든 구조였다. 세계표준으로 채택되긴 했지만 수많은 세계표준 중 하나에 불과했다. 결정적으로 시장을 잘못 읽은 게 패착"이라고 말했다.
수요가 적다 보니 휴대폰 제조업체나 통신장비업체들도 와이브로를 외면하게 됐다. 표 사장은 "(서비스가 살아남으려면 단말기가 나와야 하는데) 현재 와이브로 단말기는 노트북이나 태블릿PC에 연결해 사용하는 접속장치와 내장형 노트북 등 2가지 뿐"이라고 말했다. 와이브로를 지원하는 휴대폰은 하나도 없는 상태다.
특히 지난해 11월 세계 최대 와이브로 사업자였던 미국 스프린트조차 2014년까지 LTE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와이브로는 세계시장에선 설 땅을 잃게 됐다.
현재 국내에서 와이브로를 제공하는 곳은 KT와 SK텔레콤 두 군데뿐. 하지만 KT 90만명, SK텔레콤 5만8,000명 등 가입자가 100만명이 채 안 되는 상황이다.
방송통신위원회도 고민에 빠졌다. 시장에선 이미 '실패작'으로 판명났지만, 세계 통신시장의 주도권 확보와 특허료 수익 등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와이브로를 밀어 붙였던 방통위로선 선뜻 정책 실패를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 방통위 관계자는 "정책실패에 대한 책임문제도 있고 중국기술(TD-LTE)에 대한 정서적 반감도 있어 당장 와이브로를 포기하고 TD-LTE로 전환하기는 힘든 입장"이라고 말했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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