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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검은 그림자가…" 가위 눌리는 과학수사요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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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검은 그림자가…" 가위 눌리는 과학수사요원들

입력
2012.07.17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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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감식요원으로 8년 간 활동했던 한 경찰관은 아직도 11년 전의 현장이 떠올라 자신도 모르게 움찔한다. 유치원생 아이가 뜨거운 물에 온 몸이 데인 채 쇼크사 했고 그 옆에선 부모들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10년도 더 된 당시 현장 상황이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난다는 게 스스로도 놀랍고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가위에 눌리는 건 다반사다. "자려고 누우면 잔혹하게 살해된 망자가 검은 그림자가 되어 눈앞에 떠다녀 식은 땀을 흘리기도 해요."

경력이 많다고 다른 건 아니다. 11년 차 베테랑 현장감식요원으로 통하는 경찰관은 "산후 우울증으로 자신의 아이를 살해한 뒤 장기를 적출한 사건을 본 뒤로는 솔직히 사망사건 현장에 가기가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1년 차 요원이든 10년 차 요원이든 그때마다의 현장이 모두의 뇌리에 각인되는 건 잔혹성이 주는 충격 때문이다. 시신의 상태를 살피고 증거물을 찾아 죽음의 원인을 밝혀내는 게 이들의 몫인 탓이다.

또 다른 경찰관은 "토막살인사건부터 지하철 투신까지 현장에서 시신이 온전한 경우는 거의 없다"며 "부패가 심한 경우엔 일주일이 지나도 몸에서 역한 냄새가 나 동료조차 옆에 오지 않으려 한다"고 하소연했다.

현장감식요원과 함께 과학수사를 담당하는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들의 고충도 마찬가지다. 프로파일러는 연쇄살인사건 현장에서 범죄 수법을 분석해 용의자를 압축하고 용의자가 잡힌 뒤엔 면담을 통해 진범 여부, 살해 동기, 추가 범행의 가능성 등을 분석한다. 범죄자의 심리를 깊숙이 파헤치는 일을 하기에 '심리부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 프로파일러는 "살해범의 내면에 들어가있다 나오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심리적인 스트레스는 물론 긴장성 두통이나 근육통까지 달고 산다"고 토로했다.

이런 상황이지만 과학수사요원들에 대한 스트레스 관리나 심리상담은 전무하다. 한 프로파일러는 "범죄자를 만난 뒤에 오는 스트레스는 가족이나 친구에게도 말 못한다"며 "동료들과 서로 경험을 나누면서 치유하는 자구책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현장감식요원도 "그저 정신력으로 버텨왔을 뿐"이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과학수사요원들이 범죄 현장에서 느끼는 간접 경험은 트라우마(심리적 외상)로 되돌아오게 마련"이라며 "이직률을 낮추고 전문성을 높이려면 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찰청은 올해 '경찰관 심리검사 및 전문 상담서비스'를 도입해 6~7월 두 달 간 전 경찰공무원을 대상으로 사전 스트레스 조사를 한 뒤 일대일 상담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는 계획이지만, 과학수사요원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업무별 특수성이 고려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참여율도 전체 경찰 10만 명 중 약 2만 명뿐이다.

이 교수는 "업무의 성격과 특수성을 이해하고 있는 치료자가 아니면 공감대 형성이 되지 않으니 효과가 낮을 것"이라며 "미국, 캐나다 등의 경우엔 전문 정신과전문의를 고용해 상시 상담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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