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신 당하기 싫으면 2억원 정도 준비해 주세요."
사립 K대 체육학과 A교수는 지난 4월 연구실을 찾아온 학생 박모(31)씨에게 협박을 당했다. 박씨의 손에는 지난해 말 A교수가 모텔 침대에 주점 여종업원과 함께 누워있는 영상이 담긴 CD가 들려있었다. 박씨는 "저 정릉(폭력조직 안산정릉파)에 있습니다. 성관계 안했다고 해서 괜찮겠습니까? 유포되면 망신당할 텐데. 일주일 드리겠습니다"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2010년 조직폭력배로 활동하다 실형을 산 박씨는 출소 후 지방의 한 대학에 입학했고 지난해 위탁교육생으로 K대 수업을 들었다. 그는 그러다 친해진 교수 이모씨로부터 "무용학과 진학을 희망하는 재수생 김모양이 잘 보일 교수를 소개받고 싶어한다"는 말을 듣고, 이 교수와 함께 이 재수생에게서 돈을 뜯어낼 계획을 세웠다.
이들은 지난해 9월 경기 성남시 한 일식집에서 김양과 어머니 장모씨를 만났고, 박씨는 K대 재단의 고위직인양 거드름을 피웠다. 교수 이씨는 박씨를 가리켜 "재단 이사장을 모시는 측근으로, 무용 쪽에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분이다. 인사하고 청탁할 돈 1억원 정도가 필요하니 전해주면 된다"고 말했고, 장씨는 의심 없이 1억원을 건넸다.
박씨는 이후 A교수에게 김양을 합격시켜 달라며 로비를 벌였다. 대접을 하겠다며 서울 서초동 한 술집으로 A교수를 유인한 박씨는 그를 미리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둔 방으로 주점 여종업원과 함께 올려 보냈다. 몰래카메라 영상에는 두 사람이 함께 누워있는 모습 등이 담겼다.
하지만 A교수는 박씨의 부탁을 거절했고 김양은 입시에서 낙방했다. 이때부터 박씨의 헙박은 시작됐다. 김양에게서 1억원을 돌려달라는 독촉을 받자 그는 A교수에게 돈을 뜯어내려 했다. 박씨는 "집에 찾아가겠다. 소문 나봐야 깡패인 내가 더러워지겠습니까? 교수님 명예가 더러워지겠습니까"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등 집요하게 A교수를 협박했고, A교수는 결국 경찰에 신고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5부(부장 고기영)는 17일 박씨를 공갈미수, 사기, 성폭력범죄처벌등에관한특례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범죄를 공모한 이 교수도 수사를 받는 신세가 됐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