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이슈논쟁] 경제 민주화 어떻게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이슈논쟁] 경제 민주화 어떻게

입력
2012.07.17 12:04
0 0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경제 민주화'가 정치권의 최대 화두로 등장했다. 양극화를 해결하자는 고민에서 시작된 경제 민주화에 대해 여야는 대ㆍ중소기업 동반성장에 이어 소유지배구조 개선 논의까지 전개하고 있다. 경제 민주화 카드를 먼저 이슈화 한 쪽은 민주통합당이다.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 '재벌세 도입' 등 재벌 규제를 강화하는 9개 법안을 발의해 놓은 상태다. 여당의 유력 대선 후보인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도 대선 출마 선언을 하면서 국민 행복을 위한 3대 핵심과제 중 경제 민주화를 으뜸으로 꼽은바 있다. 영향력이 큰 기업일수록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과감하게 법을 집행하는 정부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여야 모두 재벌 규제를 경제 민주화의 핵심으로 삼고 있는 형국이지만 재계는 "취지엔 공감하나 지나친 대기업 때리기는 시장경제 질서를 훼손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갈린다. 김병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은 "여야가 재벌 개혁에 경제민주화의 초점을 맞춘 이상 보다 진정성있는 정책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며 "대기업의 경제 범죄에 대해 형벌 규정을 강화하거나 증세 등으로 재벌이 사회적 책임을 완수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재벌의 소유구조를 획일적으로 규제하는데 방점이 찍힌 경제 민주화 논의는 자유시장경제질서에서 크게 벗어나있다"며 "기업들이 시장원리에 따라 재산과 권리를 지켜나갈 수 있는 힘을 키워줘야 한다"고 말했다.

손효숙기자 shs@hk.co.kr

■ 재벌 개혁 없는 경제민주주의 무의미…구체적 입법 통해 사회적 책임 유도를

대한민국은 지금 "우리는 모두 경제 민주화론자"라고 말해도 좋을만한 분위기다. 야당에서 재벌개혁 경제 민주화를 강도 높게 주장하는 것은 새삼스러울 것이 없지만, 여당 유력 후보인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도 대선후보 출마를 선언하면서 경제 민주화를 주요 3대 공약의 하나로 제시했다. 가장 대표적인 성장론자이자 친기업론자인 이명박 대통령까지 경제 민주화를 부정적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면서 대기업을 훈계했다. 마지막으로 개혁의 대상이고 당사자인 재계조차 "경제 민주화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는다"면서 공식적으로 경제 민주화에 발을 담그게 된다.

이쯤 되면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는 시대의 화두이자 대세가 되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제 경제 민주화를 위해 무엇이 가장 시급한 것인지를 정해 입법이 필요하면 국회에서 법을 제정하고, 제도 설계를 해야 한다면 정부와 함께 제도 기획을 시작하면 된다. 그런데 일부 정치권에서는 '경제 민주화'가 무얼 말하는지 합의된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물론 학문적으로는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명확하다. 우리 헌법 119조 2항에 명시된 것처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과 안정, 적정한 소득분배의 유지,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 남용 방지, 경제 주체간의 조화를 액면 그대로 실행하면 되는 것이다.

또한 최근 진행되고 있는 논쟁을 보면 실제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를 위한 진정성을 의심케 하는 대목들도 눈에 띈다. 예를 들어 민주통합당에서 "박근혜의 경제 민주화에는 재벌개혁이 없다"는 주장에 대해, 당사자인 박 전 위원장이 "재벌해체, 때리기는 안 된다"는 식으로 대응한 것이 그 사례다. 권위주의 정치 종식 없이 정치 민주주의가 불가능한 것처럼, 재벌개혁 없는 경제 민주주의도 무의미한 것이다. 철저한 재벌개혁을 통해 경제 민주화를 해야 한다고 수용하면 되는 명백한 사인이지 논쟁할 필요가 있는 대목이 아니다.

또한 정치권을 포함한 시민단체 거의 대부분 현재 재벌해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없다. 그런데도 재벌개혁 요구를 곧바로 재벌해체로 비약시키는 것은, 마치 지나친 시장 개방과 자유무역협정에 비판적인 견해를 보이면 '그러면 쇄국을 하자는 것이냐' 하는 식으로 반발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일련의 규제가 필요하다며 요구하는 재벌개혁에 대해 재벌을 해체하자는 것이냐며 국민을 자꾸 불안하게 해서는 안 된다. 이처럼 여야 정치권 가릴 것 없이 경제 민주화를 요구하면서도 한 발만 더 들어가 보면, 경제 민주화가 합의된 내용이 없다든지, 재벌 때리기로 가면 안 된다든지 하면서 출발부터 막히는 모양새다. 자칫 재벌개혁 경제 민주화는 시작도 해보기 전에 국민들 사이에서 재벌개혁 피로감, 경제 민주화 피로감이 올까 우려된다. 특히 정치권에서 이런 방향으로 몰고 갈까 걱정이 앞선다.

이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진정으로 재벌개혁 의지가 있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여야 정치권이 모두 합의하고 당장 실행 가능한 것들이 있다. 재벌의 횡령, 배임과 같은 경제범죄에 대해 원칙적으로 집행 유예 등이 불가능하도록 엄격한 형벌규정을 강화하는 것이 그 사례다. 미국의 경우 회계부정을 저지른 기업 엔론의 전 CEO가 종신형에 가까운 24년 징역형을 선고 받아 실형을 살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재벌 총수들은 대부분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 나왔던 전례를 생각한다면 재벌 총수의 경제 범죄에 대한 엄격한 형벌규정을 당장 입법화시킨다면 그나마 재벌개혁의 진정성을 국민이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있다. 새누리당 대선후보로 나온 박 전 위원장을 포함해 대부분 대선 후보 출마자들이 경제 민주화와 사회복지를 핵심 공약으로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두 공약이 만나는 지점이 있다. 바로 재벌이 세금을 더 내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면서 복지에도 기여하는 것이다. 감면 혜택의 절반 이상이 10대 재벌에게 돌아가는 각종 세액공제 특혜를 폐지하고 최저한세율도 올려야 한다. 나아가 1%미만의 재벌 대기업에 대한 최고세율을 상향 조정해서 복지재원을 확충하는 데까지 진전시켜야 한다.

김병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

■ 재벌 소유구조 단계부터 과잉 규제땐 사유재산·시장경제 근간 흔들릴 우려

정치권에서 재벌개혁이 화두이다. 선거 때마다 항상 제기되는 문제지만 이번엔 '경제민주화'라는 헌법적 가치를 달성하기 위함이라니 예전과는 다른 분위기다. 그러나 '경제민주화'의 의미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경제민주화 달성을 위한 재벌정책과 그 평가 역시 제각각이다. '경제민주화'의 의미를 먼저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민주주의가 다수결에 의한 결정을 의미하므로 경제민주화는 국민 다수결에 의해 경제정책을 결정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정치인들이 대다수 국민의 뜻이라며 재벌개혁을 시도할 경우 반대할 명분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국민들의 다수결로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다.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한 경제질서'다. 이것은 경제민주화가 넘을 수 없는 한계다. 동시에 이러한 '골간'이 제대로 형성돼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경제민주화다. 예를 들어 재벌이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중소기업의 사유재산을 침해하거나 지배주주가 소수 주주의 권리를 훼손하는 것은 이러한 골간을 흔드는 행위이므로 당연히 규제해야 한다. 재벌의 경쟁훼손행위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경제민주화를 전면에 내세운 최근 정치권의 재벌개혁은 출자총액제한이나 순환출자 금지와 같이 재벌의 소유구조를 직접적으로 규제하는 것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시장경제의 골간을 훼손할 위험이 있는 재벌의 불공정행위를 차단하기 위해 행위의 이전단계인 소유구조 단계에서부터 철저히 규제하겠다는 취지이다. 그러나 이러한 소유구조 규제가 오히려 시장경제의 골간을 흔들 위험이 있다.

회사의 소유구조는 개별 기업들이 자신들의 업종과 상황에 따라 가장 경쟁력 있게 설계하기 마련이므로 인위적으로 개혁할 대상이 아니다. 회사의 소유구조를 사전에 획일적으로 규제하는 나라가 거의 없는 이유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유럽연합(EU)에서도 회사 소유구조는 자유시장원리에 따라 형성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표명한 바 있다. 사전적 규제는 득보다 실이 더 많으므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후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외국기업들은 자신들에게 가장 적합하고 효율적인 소유구조를 갖추고 글로벌 시장에 나온다. 반면 우리 기업들은 법이 만들어 놓은 획일적인 소유구조 틀 속에 갇힐 위험이 있다. 경쟁이 제대로 이뤄질 리 없다. 특히 다른 나라 기업들은 포이즌필이나 차등의결권과 같은 경영권방어수단까지 사용할 수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둘 다 사용할 수 없다. 그 나마 경영권 방어수단 역할을 해온 순환출자가 금지될 경우 우리 기업들이 외국 기업의 먹이감이 되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 나쁜 짓을 했을 때는 당연히 나무라야겠지만 나쁜 짓을 할까 봐 미리 가둬버리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다.

재벌과 같은 기업집단 소유구조는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현상이다. 물론 다른 나라의 기업집단과 우리의 재벌이 다를 수 있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는 없거나 다른 나라들 보다 강화된 형태의 규제들을 잔뜩 가지고 있다. 이 중 상당수는 최근 도입된 것들로 시행 초기단계이다. 그런데도 소유구조 규제를 계속 강화하고자 하니 시장경제원리와 갈등을 빚으며 과잉규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한 경제질서'는 경제민주화 논리로도 넘어 설수 없는 그야말로 우리나라의 '골간'이다. 그렇다고 '경제민주화'와 '시장경제'가 대립관계이거나 제로섬 관계는 결코 아니다. 중소기업 보호를 위해 대기업의 행위를 사전에 철저히 옭아매야만 경제민주화가 달성되는 것도 아니다. 중소기업이 지속적으로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한 경제질서'에 안착하며 자신들의 재산과 권리를 시장원리에 따라 지켜나갈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 것이 '경제민주화'다. 그래야만 경제주체 간 지속적인 상생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