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전(葉錢)은 옛 고려·조선 시대 등의 구멍 뚫린 주화(鑄貨)를 말한다. 이게 우리나라 사람이 스스로를 낮잡아 이르게 된 것은 일제 치하다. 현대식 종이돈이 나왔는데도 옛 엽전을 고집하는 것에 빗대어 봉건적 인습을 벗어나지 못했음을 경멸하는 투로 쓰였다. 우리 민족성의 열등함을 강조, 일제 지배를 정당화하는데 이용했다. 그만큼 요즘엔 거의 쓰지 않는 말이다.
■ 박근혜 후보가 박정희 대통령의 리더십을 말하면서 '엽전'론을 앞세웠다. 신문방송편집인협회 토론회에서 "아버지 리더십의 가장 큰 장점은 '엽전'이 뭘 하겠느냐는 분위기에서 새마을운동 등으로 '우리도 잘 할 수 있다"는 국민의 자신감을 불러일으킨 점"이라고 말했다. 그 시절을 경험한 세대에는 익숙한 비유이고 수사(修辭)이겠으나, 요즘 젊은 유권자들에게는 생경하게 들릴 듯하다. 그의 정치적 수사는 자주 고풍스럽다.
■ 역사학자 황병주는 새마을운동은 민족 계급 성(性) 학력 등 삶의 모든 부문에서 불평등의 경험을 간직한 농민과 대중의 평등주의 압력의 결과로 보았다. 박정희는 현실의 불평등을 전근대 봉건적 요소로 파악하면서 "우리 민족에겐 다른 사람을 하시(下視)하고 천시(賤視)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를 극복하는 데는 근대적 인간의 자아를 확립하는 의식 혁명이 선결 과제였다. 새마을운동은 그렇게 평등주의적으로 통합된 국민의 '다 함께 잘 살기 위한 운동'이었다.
■ '빈농의 아들'박정희는 '서민으로 태어나 서민으로 죽겠다'고 공언했다. 한국의 최고 권력자가 대중과 동질적 인간임을 강조한 전례는 없었다. 이승만은 '파시즘보다 200년 앞선 부르봉'이었고, 윤보선은 명문 귀족이었다. 박정희는 반(半)봉건적 위계 질서에 얽매인 농민 등 대중에게 경제적 상승과 함께 낡은 질서를 타파하는 사회 혁명을 경험하게 했다. 폭압적 유신 체제에서 역설적으로 농민과 대중은 근대적 평등주의, 새로운 민주주의를 경험했다는 역사학자들의 평가는 결코 기이(奇異)한 것이 아니다.
강병태 논설고문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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