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16일 화요일, 늦밤까지 국회방송을 시청했다. 10시간에 걸친 현병철 인권위원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였다. 시종 불편했다. 내가 만약 저 자리에 섰더라면 어땠을까, 수없이 자신에게 되물었다. 내게도 해당되는 그의 약점이 더러는 있을 것이다. 후임자의 업무능력이나 자질은 전임자인 내가 언급할 사안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객관적인 처지가 아니다. 그를 격려하며 임명장을 준 국가원수는 재직 중 나를 대면하기조차 거부했으니. 또한 전관의 예의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몇 마디 고언을 불사하는 것은 인권위라는 국가기관의 존재와 역할에 대한 사명감 때문이다.
뒤늦게나마 인권위원장이 인사청문회의 대상이 된 것은 제도의 발전이다. 그 직책에는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국정철학보다 국민의 윤리적 공감대가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청문회에서 예상보다 훨씬 많은 의혹과 강도 높은 비판이 제기됐다. 적지 않은 여당의원들도 가세했다. 거론된 세부사항의 진위는 내가 판단할 몫이 아니다. 적어도 일부 사실에 대해서는 짐작되는 바가 없지 않지만 그보다 내가 느낀 참담함의 정체는 또다시 '독립기관'으로서의 인권위의 위상과 자부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는 데 대한 분노다.
인권위원장은 그 어느 자리보다도 힘들다. 격려보다는 견제와 비판을 항시 받으며 살아야 한다. 한마디로 권력 대신 매력으로 지탱하는 자리다. 이런 측면에서 취임 때부터 결코 우호적이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3년을 버티어 낸 현 위원장의 소신과 저력이 부럽다. 그런가 하면 국제사회의 비판 속에서도 굳이 그의 연임을 강행하려는 이명박 대통령의 고집과 뚝심은 더없이 답답하다. 새삼 '확신의 함정'이 더없이 위험해 보인다.
현 위원장의 업무친밀도는 3년 전과는 다를 것이다. 사실 인권이 별 것인가, 법이 곧바로 인권이지. 그의 말도 전혀 일리가 없지는 않다. 문제는 마음가짐이다. 다수보다 소수, 강자보다는 약자, 국가보다는 개인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가짐 없이는 인권을 논할 수 없다. 재임 3년, 비록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았어도 그가 고삐를 쥐었던 인권위는 적지 않은 업적을 남겼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두 가지 측면에서 커다란 아쉬움을 남겼다. 그래서 그의 연임이 나라와 국민에게 결코 지혜로운 일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바이다.
첫째, 그는 재직 중에 인권의 정치화를 가속시켰다. 인권위의 수장이 대통령의 정치철학을 공유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업무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만은 지켜야 한다. 가장 큰 성과라고 청와대가 칭송하는 '북한인권' 업무도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의 선봉장을 자임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인권에 정치적 색채를 덧칠했다. 둘째, 자신이 수장인 구성원의 화합을 크게 해쳤다는 점에서 실패한 위원장이다. 인권위는 독임 기관이 아니라 합의제 기관이다. 개개인의 성향과 믿음이 존중되고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는 상임위를 무력화시키고, 많은 위원과 조력자들이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다양한 배경과 철학의 구성원을 포용하는 대신 비판적 성향의 직원을 박해로 일관했다. 눈에 거슬리는 직원을 쫓아내고 남은 비판자를 징계로 다스렸다. 그들의 주장이 옮고 그름을 떠나서 직원들 사이에 불신과 반목의 골을 깊이 파 놓았다. 이 모든 처사가 청와대와의 교감 아래 이루어졌다는 의심이 들게 하는 정황도 있다.
다수 직원들이 그의 연임을 반대하는 성명에 동참했다. 반드시 옳지는 않을지라도 충분한 이유가 있다. 현병철 위원장의 연임, 전향을 도모하는 새누리당의 이미지에 흠이 되기 십상이다. 정파를 떠나 국회의 지혜로운 의견을 기대한다. 국회가 어떤 입장을 취하든, 대통령을 구속할 법적 근거는 없다. 최종결정은 대통령과 현 위원장, 두 분의 몫이다. 이미 충분한 철인경기를 치른 두 사나이의 소신이 불러올 국민적 비극이 무섭다. 내부의 분열, 시민사회의 저항, 국제사회의 비난이 이어질까 실로 걱정이다. 곧 떠날 대통령의 뒷모습조차 미리 측은하다.
안경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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