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신사의 품격'이 인기를 끌면서 주인공 김도진(장동건 분)이 일하는 독특한 분위기의 사무실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건축가인 그가 일하는 장소는 실제 건축설계사 '공간(SPACE)그룹'의 사무실이다. 서울 원서동에 자리한 공간 사옥에는 드라마 방영 이후 평일에도 하루 20여 명이 찾아와 외관을 둘러보고 카메라에 특별한 감흥을 담아간다.
건축가 김수근(1931~1986)이 지은 공간 옛 사옥은 문화재 등록 건축이자 1998년 건축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대한민국 50년 사상 최고의 건축'설문 조사에서 1위로 뽑힌 곳이다. 사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건물 벽면의 담쟁이 넝쿨로도 유명하다. 김수근은 1971년에 지하 2층, 지상 5층의 벽돌 건물을 짓고 1977년에 바로 옆에 같은 재료로 증축했다. 먼저 지은 건물 2층에는 그의 손길과 정신이 남아있는 책상과 책장, 그리고 손님용 탁자가 지금도 그대로 놓여있다.
김수근, 장세양(1947~1996) 대표에 이어 지금 공간 사옥에서 손님을 맞는 이는 이상림 대표다. 김수근이 30년 전 그를 면접했던 그 자리다. "김수근 선생의 건축철학이라고 하면 한국성의 회복 혹은 인간성의 회복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가 늘 강조했던 휴먼스케일이라는 것은 우리 몸에 잘 맞는 공간을 말하거든요. 인간 중심의 공간을 강조한 것이죠. 그가 벽돌 건물을 선호한 이유 중 하나도 벽돌이 한 손에 잡히는 적당한 크기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의 벽돌 건물에 들어서면 생각보다 천장은 낮고, 계단은 좁다. '자궁공간'이라고도 일컬어지는 공간의 아늑함은 낭비 면적을 최소화하면서 당시 한국 사람 몸에 적당하게 설계됐다. 반층차 높이의 계단을 사이에 두고 상층과 하층을 분리한 스킵플로어(skip floor)는 쉽게 말해 5층짜리 건물을 10층처럼 활용하는 방식이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올수록 점점 넓어지는 계단도 이색적이다. 위에서 아래층으로 내려올수록 계단에 유입되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점을 고려한 설계다.
전 직원을 수용하기에는 건물이 비좁아지자 공간그룹의 2대 대표인 장세양이 1997년 완공한 건물이 벽돌 건물을 마주보고 선 새 사옥이다. 스승 김수근의 건축 혼을 투영하면서 그가 늘 바라보던 창덕궁을 가리지 않기 위해 선택한 재료는 주변 풍광을 투과하는 유리였다. 유리건물은 단순하지만 명쾌하다. 장방형의 박스형 건물로, 한쪽엔 계단이, 다른 한쪽에는 직사각형의 사무공간이 자리한다. 두 건물 사이의 20년 시차를 유리로 감싼 구름다리가 잇는다. 이들 건물 사이에 조선시대 기와집이 더해지면서 역사와 현재가 어우러져 보기 드문 조화를 만들어낸다. 평소 빨간 벽돌을 사용했던 김수근은 주변 기와색과 통일감을 주기 위해 공간 사옥에는 흑벽돌을 사용했다고 한다.
공간 사옥 내부가 궁금하다면 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도 있다. 비정기적으로 무료 운영되며 문의전화는 (02)3670-3500.
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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