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스타전 브레이크를 앞둔 롯데가 만족할 만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16일 현재 39승4무32패로 선두 삼성에 2.5경기 차 뒤진 2위다. 지난해까지 투타의 중심이던 이대호와 장원준은 없다. 그러나 4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롯데의 저력은 변하지 않았다.
그 중심에는 왼손 타자 박종윤(30)이 있다. 팀 내에서 가장 많은 결승타(7개)를 때리는 등 타율 2할6푼8리에 40타점 8홈런을 기록 중이다. 양승호 롯데 감독은 요즘 박종윤을 칭찬하느라 입에 침이 마른다. "성실함은 팀 내 최고"라며 "타격뿐만 아니라 수비가 일품이다"고 했다.
"중 3때 뒤늦게 시작한 야구, 원래는 투수였다."
박종윤은 사실 투수였다. 제일중 3학년 때 야구를 시작한 뒤 포철공고 때까지 왼손 투수로 활약했다. 야구 입문이 늦다 보니 처음에는 세밀한 규칙을 몰랐다. 기본기가 부족해 동료들 보다 2배 이상의 훈련을 해야 했다.
박종윤은 16일 "당시 직구 최고 시속은 135㎞정도였던 것 같다. 키는 컸지만 그리 좋은 투수는 아니었다"며 "구단이 2001년 나를 뽑았을 때도 당장의 실력 보다 장래성을 내다봤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다 우용득 전 롯데 2군 감독의 권유로 방망이를 잡기 시작했다. 포철공고 시절 박종윤의 타격을 유심히 지켜본 우 감독은 188㎝, 92㎏의 좋은 신체 조건이라면 타자로서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지금은 두산에 있는 (최)준석이가 4번, 제가 고등학교 때 3번을 쳤습니다. 2001년까지는 2군에서 투수 수업을 받았는데, 이듬해부터 본격적으로 타자로 전향했습니다. 당시 야구장 근처 기숙사에 있었는데요. 방 안에서 얼마나 방망이를 휘둘렀는지 모릅니다." 박종윤을 만든 건 9할이 노력이다.
"10년 간의 기다림, 투수였다면 벌써 옷 벗었을 것."
타자로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지만 기다림의 시간은 길었다. 리그에서 가장 타격이 강한 롯데의 1군 주전 자리를 꿰차는 건 힘든 일이었다. 그래도 박종윤은 포기하지 않았다. 주로 2군에 머무르다 간간히 출전하는 1군 무대지만, 내일을 위해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2군에서 여러 명의 지도자를 만났습니다. 수 없이 타격폼을 바꿨고 몸에 맞는 스윙을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사실 지금의 타격폼을 완성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죠." 박종윤은 8개 구단 타자 가운데 낮은 공을 가장 잘 때리는 선수다.
어느덧 프로 12년 차에 접어든 베테랑은 특히 "만약 투수로 계속 던졌다면 지금까지 선수 생활을 하지 못했을 것 같다. 타자였기 때문에 긴 무명 생활을 버틸 수 있었고, 2002년 방망이를 잡은 것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올해 좋은 일들만 가득해. 더 없이 행복하다."
박종윤은 올해 벌어지는 일들이 꿈만 같다. 팀이 치른 75경기 중 74경기에 출전했고 결승타 1위, 타점 2위(40개), 홈런 2위(8개)를 기록 중이다. 그래도 "앞에 좋은 타자들이 많아 찬스가 생기고, 자연스럽게 타석에서 집중하게 된다. 실력 보다는 동료들 덕분이다"고 자신을 낮췄다.
지난 14일에는 둘째 아들까지 얻었다. 2008년 12월 결혼해 슬하에 1녀(서현)를 두고 있다가 부인 주미경 씨가 3.52㎏의 건강한 아들을 출산했다.
박종윤은 "이름은 아직 정하지 않았다. 서현이처럼 작명소에 가서 좋은 이름을 지어주고 싶다"며 "올해 올스타전에도 뽑히고 둘째도 얻고, 경기에 출전하는 시간도 많고 좋은 일들만 가득해 더 없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 아내에게 고맙다. 옆에서 가장 많이 도와줬고 위로해줬다. 아내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다"고 밝게 웃었다.
함태수기자 hts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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