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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이주일의 小史] <57> '지상에 내려온 요정' 코마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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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이주일의 小史] <57> '지상에 내려온 요정' 코마네치

입력
2012.07.16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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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7월 18일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체조경기장. 키 153cm 몸무게 39kg의 가냘픈 체구를 지닌 14세 소녀가 2단 평행봉 앞에 섰다. 40여 초 동안 아름답고 신비로운 동작으로 연기를 마친 소녀가 나비처럼 사뿐히 착지하자 경기장에 모인 관중들은 넋을 잃은 채 기립박수를 보냈다.

잠시 후 심사위원들은 서로의 얼굴을 흘깃거렸고 경기를 마친 소녀가 전광판의 숫자를 확인하자 경기장의 모든 관중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전광판의 점수 1.00 에 화가 난 코치가 항의하려 하자 한 심사위원이 열 손가락을 펴며 소리쳤다. "1점이 아니라 10점입니다. 만점 말입니다."놀라던 관중들이 다시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루마니아 대표로 참가한 나디아 코마네치가 체조 역사상 세계 최초로 10점 만점을 받는 순간이었다.

사람이 점수를 매기는 체조 경기에서 8명의 심사위원에게 모두 10점 만점을 받는다는 것은 애초 불가능한 일이라 여겼기에 점수 전광판은 9.99 까지만 표기할 수 있도록 설정돼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놀라움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 앳된 소녀는 이어진 평균대 등 무려 6종목에서 10점 만점을 더 받아내 금메달 3개를 비롯, 총 5개의 메달을 목에 걸며 wp21회 몬트리올 올림픽의 최고 영웅으로 떠올랐다. 미국의 '타임'지는 그녀를 탄력이 충만한 바비인형이라 표현하며 "인간의 몸을 빌려 지상에 나타난 요정"이라는 최고의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요정의 현실은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금메달을 딴 후 첫 마디가"집에 가면 햄버거와 사탕을 실컷 먹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처럼 조국 루마니아는 독재자 차우세스쿠의 폭정에 시달리고 있었다. 정권의 선전도구로 활용되며 감시와 통제에 시달리던 코마네치는 89년 겨울, 여권도 없이 목숨을 건 망명을 감행했고 헝가리와 오스트리아를 거쳐 미국에 정착했다. 차우세스쿠 정권이 혁명으로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찾아온 자유는 그녀에게 또 다른 고통이었다. 스캔들과 주위의 냉소로 시련의 시간을 보내던 그녀를 지켜준 사람은 미국 체조선수 출신인 버트 코너. 서로 의지하던 두 사람은 96년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고 지금은 함께 미국 오클라호마에서 체조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세계선수권과 올림픽을 통틀어 총 21개의 금메달을 목에 건 체조요정 코마네치. 그 중에서도 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의 10점 만점 연기는 언제 봐도 아름답기만 하다. 이 경기에서 한국 레슬링의 양정모도 건국 후 첫 금메달을 따냈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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