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개최된 세계정치학회(IPSA) 세계대회에 다녀왔다. IPSA는 1949년 설립되었으며 한국정치학회를 포함, 전세계 50여개국의 정치학회들을 기관회원으로 두고 있다. 정치학의 올림픽이라 부를 수 있는 세계적 규모의 정기적 학술회의로, 이번 제22회 세계대회의 경우 공모를 통해 접수된 일반 패널과 논문 수만 따져도 각각 832개와 5,255개에 달했다. 한국정치학회는 통일부의 지원을 받아 수행해 온 대규모 통일외교 연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4개의 일반 패널과 수 차례의 워크숍 및 간담회를 조직해 참여했다.
이번 대회는 '권력의 변화, 경계의 변동'의 주제 하에 기존의 정치 질서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정치 질서를 논하고 모색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가령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지구적으로 확산하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초국적 차원의 거버넌스 논의가 이루어졌다. 전 세계적으로 기존 대의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환멸과 좌절감이 소위 점거운동으로 나타나면서 소셜미디어에 기반을 둔 직접행동 등 새로운 정치참여 방식에 대한 패널들이 다수 조직되었다. 그런가 하면 종교, 문화, 민족, 지역, 젠더 등 정체성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 즉 정체성의 정치가 주요 소주제로 다루어지기도 했다. 한마디로 현 세계정치학계는 국가 행위자 뿐 아니라 다양한 초국가, 비국가 행위자들이 등장해 기존 국민국가의 경계와 대의민주주의의 틀을 뛰어 넘고 있는 새로운 정치현실과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등 영역 간 경계가 흐려지면서 나타나고 있는 새로운 권력현상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IPSA 세계대회 개최지인 스페인은 이러한 변화의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스페인은 현 유로존의 정치경제적 위기의 중심에 놓여있으며 미국의 '월스트리트를 점거하라'에 해당하는 '분노한 사람들'시위로 유명하다. 11일 필자가 머물던 호텔에서 가까운 마드리드 푸에르타 델 솔 광장에는 세금 인상과 실업 수당 축소 등 스페인 정부의 긴축정책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레알 마드리드와 FC바르셀로나 사이의 축구전쟁은 스페인의 지역 정체성을 둘러싼 갈등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예다. 이번에 들은 얘기지만 2002 월드컵 당시 마드리드 출신 선수로만 구성된 스페인팀과 한국팀의 8강전 마지막 페널티 킥에서 홍명보 선수가 골을 넣었을 때 바르셀로나인들이 환호했다는 에피소드도 양 지역 사이의 앙숙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IPSA 세계대회의 문제의식에 조응해 한국정치학회의 통일외교 연구 프로젝트도 기존의 주변 강대국 위주의 통일외교를 넘어 유럽과 다른 중견국들을 포용하는 다자적 접근과 비국가 행위자들을 포함하는 인식공동체 구축을 제안했다. 실제 마드리드에서는 IPSA의 전ㆍ현직 회장 및 집행위원들을 간담회에 초청해 한국의 통일외교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기 위한 노력을 취하기도 했다.
스페인에서 간간이 인터넷으로 한국 뉴스를 접하긴 했지만 일주일 만에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비로소 여유 있게 한국 신문들을 읽어 볼 수 있었다.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 정두언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을 둘러 싼 책임 공방과 특정 대선주자의 대선전망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대선전략 등에 대한 기사들이 눈에 들어 왔다. 갑자기 이런 생각들이 떠올랐다. 전 지구적 '권력의 변화, 경계의 변동'에 대한 성찰 없이 일국적인 차원에서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를 논하는 것이 적절할까. 혹시 우리의 정치적 관심이 선거를 둘러싼 중앙정치에 쏠리면서 자칫 초국적 혹은 지역적 차원의 중요한 문제들을 놓치고 있지는 않는가. 일주일이 지나도 여전히 역동적인 '다이내믹 코리아'의 일면을 보는 듯 하면서도 일말의 우려를 지울 수 없었다.
김의영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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