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이 뭐야, 한마디로 야만의 시절이었지." 어린 후배들과의 대화에서 어쩌다 20년 전 나의 햇병아리 기자 시절을 돌이킬 때면 하는 말이다. 가해자 피해자 가릴 것 없이 사건 관련자는 한자이름과 나이, 심지어 집주소 번지수까지 밝혀 적던 시절, 얼굴사진 하나 구하려 남의 집 담장을 넘고 팩트 하나라도 더 챙기기 위해 경찰 사칭도 마다하지 않는 걸 '기자정신'으로 알았던 시절, 성차별을 넘어 성희롱까지도 '대범하게' 참고 넘기는 것이 남성중심사회에서 살아남는 현명한 길이라고 여겼던 시절…. 어디 언론계뿐이겠는가. 인권 문제에 관한 한, 모두가 피해자이면서, 한편으로는 관행에 젖어 무지하게, 더러는 알면서도 비겁하게, 가해자가 되곤 했던 것이 그리 멀지 않은 과거 우리의 모습이다.
민주화 이후 25년, 인권에 관한 사회적 인식도 많이 성숙했다. 여전히 생존권과 노동할 권리를 외치다 두들겨 맞고 감옥에 가고 목숨까지 잃는 세상이지만, 적어도 너나없이 인권에 무지하던 '야만의 시절'은 벗어난 듯하다. 이런 변화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인권이란 말조차 생경하던 시절부터 뜻을 모아 인권지킴이로 나섰던 이들, 모두가 침묵할 때 온갖 탄압과 불이익을 무릅쓰고 싸웠던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001년 11월 25일, 입법ㆍ행정ㆍ사법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기구로서 국가인권위원회가 출범한 것은 그런 지난한 투쟁의 산물이었다. 길지 않은 역사지만 인권수호의 최후의 보루로서 착실히 역량을 쌓아가던 국가인권위가 인권'유린'위원회라는 오명을 쓰고 난타를 당하고 있다. 3년 전 오늘(17일), 현병철 위원장이 취임한 이후 벌어진 일이다.
이명박 정권의 인권위 조직 축소 움직임에 반발해 안경환 당시 위원장이 임기 4개월을 남겨놓고 물러난 뒤 이 자리를 꿰찬 현 위원장은 취임 초 인권 관련 활동이 전무해 자격이 없다는 비판에 대해 이렇게 당당하게 답했다. "인권위와 인권 현장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 …차라리 모르는 게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취임을 결사 반대했던 인권단체 관계자들은 물론 인권에 둔감했던 일반 국민들조차 경악하게 했던 이 궤변에 숨은 속뜻이 무엇이었는지는 지난 3년간 인권위의 행보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는 용산참사 당시 경찰의 과잉진압에 대한 의견 표명을 막기 위해 "독재라도 어쩔 수 없다"며 폐회 선언을 해버리는 등 정권이 불편해 할 사안은 갖은 수단을 동원해 논의 자체를 차단했다. 인권위 직원에게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은 아예 올리지 말라"고 지시했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국가기관의 인권침해 행위를 눈에 불을 켜고 찾아내 시정하게 하는 '감시견' 노릇을 시켜놨더니, 거꾸로 인권침해 피해자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정권의 비위를 맞추는 '애완견' 노릇을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와대는 이런 부적격 인사의 연임을 결정하면서 "중립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에서 국민의 인권을 보호했다"는 어처구니 없는 사유를 내세웠다. 인권위의 요청으로 <불편해도 괜찮아> 를 쓴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지적처럼, '의심스러울 때는 약자의 이익으로'가 인권 문제를 다루는 기본 원칙이어야 함을 철저히 부정하는 언사다. 세계적 인권단체인 국제엠네스티가 현 위원장의 연임에 깊은 우려를 표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불편해도>
16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는 현 위원장에 관한 각종 의혹들이 쏟아졌다. 그는 논문 표절 지적에 "과거 관행"이라며 사실상 시인했고, 땅투기, 아들 병역기피 의혹 등에도 이렇다 할 해명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정권 고위공직자들의 '필수자격요건'이 돼버린 의혹들을 들먹이며 도덕성을 따질 필요도 없이 그는 부적격자다. 인권위의 독립성을 지켜낼 의지도, 전문성도, 더 근본적으로는 사회적 약자의 아픔을 내 것으로 느끼는 인권감수성도 갖추지 못한 그를 연임시킨다면, 대한민국이 인권후진국임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꼴이다.
이희정 선임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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