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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3. 집을 버리다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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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3. 집을 버리다 <77>

입력
2012.07.16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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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감은 별기군 병영이 있는 곳이었고 전옥서에는 그들의 편이 되어줄 척사파를 비롯한 선비들이 갇힌 곳이었다. 그들은 길 건너 서린방으로 몰려가 의금부를 점령했고 연이어 전옥서를 활짝 열어젖혔다. 여기서도 모든 죄수들이 풀려났다. 서일수와 이신통은 박도희를 옥에서 꺼내어 난군들 틈에 섞였다. 서일수가 두 사람에게 말했다.

자네들은 우선 구리개 집으로 가 있게. 나는 만복이 옆에서 사태를 좀더 지켜볼 터이니.

어둡기 전에는 돌아오셔야 하우.

이신통이 걱정스럽게 말하고는 박도희를 데리고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영장 김영춘이 옥에서 나오자마자 하도감을 치러 가자고 했으니, 그곳은 원래부터 그들 자신의 부대가 있는 곳이었지만 눈에 가시 같았던 신식 군대 별기군의 막사가 있었다. 군병들 대부분은 자신들의 처우가 달라지고 오영이 통폐합된 원인이 왜별기에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운현궁 호종무사 허민은 일단의 시정배들과 함께 별장 김장석 등과 돈의문 밖의 경기감영으로 향했는데 그곳에 일본 영사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도감과 경기감영은 종루에서 보자면 양쪽 다 비슷한 거리여서 어느 쪽이든 깨트리고 나서 한 곳으로 합세하기로 하였다.

영장 김영춘과 별장 김만복이 이끄는 무장 병력은 종루에서 배오개를 지나 청계천 마전교를 건너 하도감 쪽으로 육박했다. 하도감 관문이 보이는 곳에서 일단 행군을 멈춘 군병들은 대문이 굳게 닫혀 있고 인기척이 보이지 않는 것에 긴장하게 되었다. 뭔가 낌새가 좋지 않았던 것이다. 오백여 명의 군병들 중에 화승총과 양총을 가진 자는 이백여 명쯤 되었고 나머지는 거의가 장창과 환도로 무장했다. 양총은 무라다 소총에 길고 뾰족한 총창을 꽂은 것들이었다. 김만복이 그중 장창과 환도로 무장한 자들 십여 명을 이끌고 먼저 정찰하러 관문 쪽으로 달려가는데 누군가 개천 쪽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군병들을 향하여 팔을 휘저었고 언뜻 살피니 일대의 다리 밑에 사는 깍정이들이었다.

담 뒤에 포수들이 숨어 있소!

아니나 다를까, 총성이 울리면서 탄환이 빗발치듯 날아왔고 두엇이 맞아 쓰러졌다. 그들은 개천 아래로 뛰어내려가 몸을 숨겼다. 김만복이 위로 다시 기어올라가 하도감 관문 쪽을 살피니 담 너머에서 흑립을 쓴 군사의 머리가 올라왔다 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영장이 거느린 본대의 군병들도 그들을 따라 개천 아래로 내려왔다. 오간수교에서 마전교에 이르는 일대의 깍정이 꼭지딴이 영장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는 꾀를 알려준다.

저희가 인근에서 사다리를 가져오겠습니다. 담을 넘어 들어가기만 하면 일시에 무너질 거외다.

마침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밤이 되면 이쪽에 더욱 유리해질 것이었다. 사다리 두 틀을 가져왔는데 모두가 지붕 잇는 데 쓰일 만한 팔구 척의 맞춤한 것들이었다. 양총을 가진 병사들을 뽑아 대를 나누어 한 편은 관문 오른쪽 담 모퉁이를 돌아 적당한 곳에 대어놓고 오르기로 하고, 다른 한 쪽은 왼편 담이 꺾어진 곳으로 돌아 나아가게 하였다. 모두들 담 안의 어느 방향에 무엇이 있고 어느 쪽이 유리하겠는지 제 손바닥처럼 알던 군병들은 알아서 사다리를 들고 뛰어가 각각 유리한 지점에 걸치고 올랐다. 기와를 올린 관가의 담이라고 해봤자 한 길이 좀 넘는 편이라 일단 오르면 가뿐하게 뛰어내릴 수 있었다. 오른쪽으로는 작청과 행랑이 시작되는 부근이었고 왼쪽은 바로 창고의 지붕 위였다. 그들이 보니 관문 양쪽의 담에 널판자와 통나무 등을 걸쳐놓고 포수들이 총을 바깥으로 겨누고 있었다. 오른쪽에서는 관문을 향하여 나아가면서 총을 놓았고, 왼편의 지붕 위에 엎드린 군병들도 일제히 사격하니 관문을 지키던 병력이 이리저리 맞고는 떨어져버린다. 나머지는 제각기 담에서 주르르 미끄러져 내려와 총을 던지고 땅바닥에 엎드리거나 두 손을 들었다. 관문이 열리자 수백 명의 병력이 와아 하는 함성을 지르며 하도감 뜰로 돌입했고 그들은 누가 지휘할 것도 없이 각개 약진하여 작청을 지나 군영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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