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시작된 비 때문인가, 그래서인지 막상 닥친 오늘을 다소 생경스럽게 맞닥뜨린 것도 같다. 예서 오늘이라 함은 여름 한철을 삼복더위라 할 때 그 시작을 알리는 초복, 아침부터 삑삑 문자메시지가 쇄도하여 봤더니만 나의 살던 동네의 슈퍼에서들 참 친절히도 몸보신하라며 메뉴를 들이대는 것이 아닌가.
포인트 쌓아 휴지라도 받아보겠다고 인적 사항 팍팍 써서 내밀기는 하였으나 사은품 하나 돌려받은 적 없이 이사를 다닌 나, 그래도 이런 메시지 덕분에 가끔 나의 살던 집을 추억할 수 있으니 여직 지우지 않은 핑계를 예서 대보게도 되는 것이다.
'7. 18. 초복. 생닭과 전복 파격가로 드립니다. 생닭 3480원, 전복3미 5980원.' 그중 마포에 살 때 단골이던 아파트 상가 슈퍼로부터 전해 받은 메시지 속 적나라한 숫자가 유독 거슬렸다. 닭도 전복도 우리처럼 살아 있는 생명이거늘, 죄다 우리가 살리고 우리가 죽이게끔 우리가 만든 세상인 것도 알겠거늘, 아 어찌하여 닭 한 마리의 값이 점심시간에 먹다 버린 원두커피 한 잔 값에도 미치지 못한단 말인가.
너무들 잡아서 너무들 씹어대니 닭이든 돼지든 죽어라 먹인 뒤 죽어라 죽일 수밖에 없겠지. 그나저나 이 순간에 자연 속에 방사된 채 생태의 순리대로 맘껏 뛰놀던 지리산 연곡분교 아이들이 떠오른 연유는 뭘까. 그 옛날 누군지 몰라도 교실을 가리켜 닭장이라 비유한 자, 오오 아무래도 천재 같다.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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