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전 제주시 제주항에 중국 관광객 3,000여명을 태운 14만톤급 크루즈선 '보이저호'가 도착하자 부두가 분주해졌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에도 여행사 직원들은 환영 플래카드를 확인했고, 손님을 실어 나를 약 80대의 버스도 자리를 잡았다.
롯데면세점 이선화(45) 제주점장은 이날도 어김없이 부두에 나와 있었다. 검정색 정복 위에 비옷을 입은 그는 관광객들이 크루즈에서 내리고 버스에 오르는 동안 쉴새 없이 여행사 관계자들과 얘기를 나눴다. 그는 면세점 업계 최초의 여성점장이다.
제주는 중국인 관광객들로 항상 북적거린다. 면세점에 중국인 관광객은 가장 중요한 고객인데, 그 중에서도 요즘 가장 주목 받는 타깃은 크루즈 관광객들이다. 이 점장은 "전체 매출에서 크루즈 관광객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 10%밖에 되지 않지만 크루즈 관광 자체가 늘어나고 있는데다 구매력이 큰 고객이라 잠재적으로 본다면 가장 중요한 고객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부두까지 나온 것 또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현재 제주지역 면세점은 롯데와 신라 두 곳이다. 중국인 크루즈 관광객을 잡기 위한 두 면세점의 경쟁 또한 점점 더 가열되고 있다. 올해 제주를 경유하는 크루즈선은 총 86대, 관광객 수는 약 12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들을 누가 차지하느냐에 따라 두 면세점의 성패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부두에서 시작된 면세점들의 마케팅 경쟁은 매장으로도 이어진다. 일단 입지는 신라가 유리하다. 신라면세점은 제주항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위치한 반면, 롯데면세점은 30분 정도 더 가야 한다. 매장면적도 신라면세점이 약 3,840㎡(약 1,160평)로, 롯데면세점의 2배 규모다.
크루즈 관광객들은 장시간 머무는 것이 아니라, 4~5시간 안에 관광과 쇼핑을 마쳐야 하는 만큼 동선이 매우 중요하다. 롯데면세점은 이런 접근성의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해, 인근 중문관광단지 내 테디베어 등 10여개 박물관 및 식물원과 연계, 면세점을 관광코스의 동선 위에 놓이도록 했다.
아울러 두 면세점 모두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명품시계와 화장품을 대폭 확대하고 중국어 가능인력을 배치하고 있다.
마케팅 경쟁은 온라인에서도 뜨겁다. 양 사는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를 개설, 제주를 포함해 한국을 찾는 중국 고객에게 브랜드 및 상품 등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두 면세점의 판세는 신라가 우위를 점하는 상황. 하지만 이 점장 부임 이후 롯데면세점이 크루즈 관광객 유치에 총력전을 펴면서 격차는 좁혀지고 있다. 롯데 관계자는 "전국 면세점 가운데 유일하게 1위를 못하는 곳이 제주지점이었다. 여성특유의 정교함으로 1위를 달성해보라는 특명을 안고 이 점장이 임명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실제로 작년까지 신라면세점과 롯데면세점의 점유율은 7대 3 정도였지만, 올 상반기엔 롯데가 크루즈 관광객매출에서 선전하면서 6대 4 정도로 좁혀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점장은 "앞으로 비자절차 등이 더 간소화되면 중국인 관광객 수요는 더 늘어날 것"이라며 "일반 관광객도 중요하지만 아무래도 크루즈 관광객들의 씀씀이가 더 크기 때문에 이 쪽에 좀더 주력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서귀포=김현수기자 ddac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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