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리의 공식은 '돈 버는 방법을 알려주는 공식'으로 유명하다. 1956년 벨 연구소의 물리학자 존 켈리가 발표한 논문에 등장한 이 공식은 정보이론으로부터 내기에서 돈을 걸 때 어떻게 거는 것이 최선인가를 말해주는 식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MIT의 강사로 재직하던 에드 소프는 61년 켈리의 공식을 카드 게임인 블랙잭에 적용하는 법에 대한 논문을 써서 미 전역의 도박사들의 관심을 끌었다. 소프 본인도 자신의 이론을 현장에서 적용해보고 싶어서, 매니 킴멜이라는 프로 도박사와 함께 카지노를 돌면서 실제로 블랙잭을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그들은 돈을 너무 많이 따서 카지노로부터 쫓겨나기 일쑤였다. 소프는 뉴멕시코주립대로 옮긴 이듬해 자기 이론을 정리해서 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했다.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도박 분야의 고전이 되었다.
소프는 어바인의 캘리포니아주립대로 자리를 옮긴 후 블랙잭 대신 주식 시장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해서, 60년대 말부터 제임스 리건이라는 금융전문가와 함께 헤지펀드를 시작했다. 98년 소프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소프의 헤지펀드 프린스턴/뉴포트파트너스는 28년 동안 연평균 20%의 수익을 올렸다. 그보다 높은 수익을 올린 투자자도 있긴 하지만, 그만큼 안정적으로 수익을 올린 예는 없다.
소프의 펀드가 특별했던 것은 성공적인 성과만이 아니다. 보통 사람에게 컴퓨터란 인공위성 만큼이나 멀게 느껴지던 그 시절에, 드물게도 컴퓨터 시뮬레이션에도 능숙했던 소프는 수학과 컴퓨터를 이용해서 투자를 했다. 당시의 투자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시장에서 단련된 육감이었지만, 소프는 수학을 이용해서 가격을 예상하고 컴퓨터로 투자 금액을 결정해서 컴퓨터가 말해주는 대로 기계적으로 투자를 했다.
74년 블랙-숄즈 방정식으로 표현되는 옵션 가격 결정 이론이 발표된 이후, 금융 산업은 빠르게 소프의 펀드처럼 수리적 이론과 컴퓨터를 이용하는 방향으로 변모해 갔다. 기존의 금융 전문가는 프로그래밍을 할 수 없었고, 컴퓨터 프로그래머는 금융 수학을 몰랐다. 현장에서 요구되는 작업은 데이터를 분석해서 나타난 현상을 수학적 모델로 만드는 것, 복잡한 과정을 컴퓨터로 풀어서 정량적인 답을 얻는 것, 그리고 그것을 이용해서 미래의 결과를 예측하는 것이었다. 바로 물리학자들이 늘 하는 일이 아닌가. 그러므로 금융계에서 수리적 문제 해결능력으로 단련된 물리학자나 공학자들이 크게 환영을 받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결과 80년대 이후 많은 물리학자, 응용수학자, 공학자들이 투자은행과 증권회사에 채용됐다. 한때 미국에서 물리학 박사들의 가장 큰 직장은 월 스트리트라는 농담이 나왔을 정도였다. 이들을 정량적 애널리스트, 흔히 줄여서 퀀트라고 부른다.
편미분 방정식, 푸리에 급수,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 등 겉보기에는 물리학자가 하는 일과 퀀트가 하는 일이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물리학자에서 금융공학자로 진로를 바꾼 가장 전형적인 1세대 퀀트인 이매뉴얼 더만은 금융과 물리학은 다르며, 그래서 금융 분야에 처음 들어온 물리학자가 물리학에서처럼 근본적인 법칙을 찾는 일을 금융에서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것은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라고 말한다.
물리학은 수사적으로 말해서 '신의 마음'을 엿보는 일이다. 물리학에서 추구하는 자연의 법칙은 우리 바깥에, 아마도 인간을 넘어선 곳에 위치하는 불변의 것이다. 그러나 사회의 법은 불변의 것이 아니며, 그럴 필요도 없다. 인간의 법은 하늘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그 사회에 속한 인간이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사회의 법에는 그 사회의 가치관과 역사와 철학과 경험, 그리고 심지어 입법자들의 이해가 녹아들어가 있다. 그러므로 자연법칙을 대하는 자세와 사회의 법을 대하는 자세가 같을 수 없다. 자연법칙과 달리 사회의 법이 만들어지고 집행되는 모든 과정에 대해서 우리는 참여하고 이해하고 비판하는 것이 옳다. 그것이 올해 말에 국민참여재판의 최종 형태를 확정하는 국민사법참여위원회에 관심이 가는 이유다.
이강영 건국대 물리학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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