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교 정상화 40주년을 맞는 중국과 일본의 외교를 '판다 외교'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양국의 외교 문제가 껄끄러울 때마다 판다가 등장해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준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쓰촨(四川)성에서 주로 서식하는 판다를 멸종위기동물로 분류해 해외 반출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지만 유독 일본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중국은 1972년 일본과의 국교정상화를 기념, 판다 한 쌍을 도쿄 우에노동물원에 임대했으며 2000년에는 한신대지진 피해지역인 고베의 시립왕자동물원에 판다 한 쌍을 보내 피해주민을 위로했다. 우에노동물원의 판다가 2008년에 죽자 중국은 지난해 2월 판다 한 쌍을 또 다시 10년간 임대해주었다. 임대비용이 연 7,300만엔(10억여원)이나 되지만 판다를 보기 위해 찾는 입장객만으로도 임대비용을 뽑고도 남을 정도다. 판다에 대한 일본인의 애정은 그 정도로 대단하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도 지난해 11월 방중 당시 도호쿠 대지진 피해지역인 센다이(仙台)시 야기마동물원에 판다 한 쌍을 임대해줄 것을 요청했다. 양국이 영토분쟁중인 센카쿠(尖閣)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ㆍ釣魚島) 해상충돌 사건 이후 냉랭해진 양국관계를 진전시키려는 제스처였다. 물론 중국도 긍정적인 답변을 보냈다. 양국은 현재 실무진 차원에서 임대시기와 조건 등을 협의하고 있다.
그렇게 위력을 발휘했던 판다 외교가 지금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위기의 원인을 제공한 인물은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도지사다. 그는 이달 초 우에노동물원의 암컷 판다 신신이 임신했다는 소식에 "새끼 이름을 센센과 가쿠가쿠라고 짓는 게 좋겠다"고 했다. 이시하라 지사가 매입을 추진 중인 센카쿠의 한자 '센(尖)'과 '가쿠(閣)'에서 따온 것으로 중국을 의도적으로 자극하려는 것이다. 판다의 소유주이자, 새끼의 이름을 짓는 권리를 가진 중국은 즉각 반발했다.
이시하라 지사도 물러서지 않았다. 일본 언론이 새끼 판다 탄생 소식을 호외까지 만들어 뿌렸고 범국민적으로 판다의 탄생을 축하했지만 이시하라 지사는 "그 따위 것에 관심 없다"고 일축했다.
우익 정치인의 막말 소동으로 마무리될뻔한 사건은 공교롭게도 새끼 판다가 출산한 지 1주일 만에 폐렴으로 급사하면서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중국 네티즌들은 판다의 죽음에 대해 "이시하라 지사의 지시로 판다가 살해됐다" "판다의 죽음은 일본의 정치적인 판단"이라는 등의 비난 글을 올리고 있다. 반면 일본 우익세력들은 "오히려 중국이 판다를 정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대응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노다 총리가 센카쿠열도 국유화 방침을 밝히고, 센카쿠 열도 매입과 관련해 중국에 우호적인 발언을 한 니와 우이치로(丹羽宇一郞) 주중 일본대사를 15일 소환하면서 양국의 긴장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시하라 지사의 발언이 촉발시킨 판다 외교의 위기는 다행히도 오래가지는 않을 듯하다. 대다수 일본인과 중국인은 판다에 정치와 무관한 순수한 애정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일본인이 우에노동물원에 설치된 새끼 판다의 조문소를 방문해 "천국에 가서는 젖 많이 먹고 푹 쉬어라" "이렇게 빨리 죽어서 안타깝다"는 등의 위로 메시지를 남겼다. 이를 본 중국의 한 네티즌은 "판다의 죽음에 진심으로 울고 있는 일본인을 보면서 감동했다"는 글을 올렸다. 매년 한차례 발정기가 도래하는 판다의 습성으로 볼 때 내년에도 새끼 판다가 탄생할지 모른다는 기대감도 크다. 그렇게 태어난 새끼 판다는,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일본과 중국을 가깝게 하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 순수한 동물을 또다시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한창만 도쿄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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