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 아흐레 아침이 밝았다. 별장 김장석과 사수 유영길은 구속 군병의 혈속임을 내세우고 여전히 파자교 앞에 모여든 군인들 중에 군교급으로 이십여 명을 모아 무위영의 무위대장이던 이경하(李景夏)의 집으로 몰려갔다. 우선 지휘 계통을 밟아 직소하는 명분을 쌓기 위함이었다. 이경하는 대표자만 들어오라고 하여 김장석 유영길이 들어가니 관아에서 죄인 다루듯 마당에 꿇려놓고 당상에 앉아 부장과 더불어 그들을 만났다.
너희들의 억울함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원래 급료의 관할권은 선혜청에 있다. 내가 당상이신 병판 대감에게 선처해주시라는 편지를 써줄 것이니 그쪽에 가서 직소해 보아라.
그럴 줄을 모르던 바는 아니었으나 직속상관인 이경하의 비겁한 책임 회피에 동행했던 군교들은 더욱 분노했다. 그들은 파자교 앞으로 돌아와 민겸호의 집으로 가자고 외쳤고 군병들 수백여 명이 수진방의 민겸호네 집으로 몰려갔다. 하인들이 대문을 굳게 닫아걸고 행랑채며 사랑채의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뜯어 부수어 그 조각들을 팔매질하니 몇몇 군병이 머리에 맞아 피를 흘렸다. 군병들은 선혜청에서 그들에게 부정한 쌀을 배급하던 자들의 얼굴을 알아보자, 대문을 부시고 들어가자고 외쳤다. 어느 집 기둥인지 뽑아온 통나무를 여럿이 옆구리에 끼고 대문을 몇 차례 들이박으니 빗장이 우지끈 부러져나가며 활짝 열리고 말았다. 민겸호는 미리 소문을 듣고 집안 식구들을 친척집으로 피난시켜두었고 자신은 창덕궁에 입궐해 있었다고 하였다. 지붕에 올랐던 자들 중에 동작이 잽싼 자들은 뒷담을 넘어 달아나고 일부는 잡혀서 군중에게 살해당했다. 그들은 일단 일을 저지르자 더욱 분기가 하늘을 찌르는 듯했다.
굶어 죽든 처형당하든 매한가지다. 마땅히 죽일 놈들을 죽여서 우리의 원한을 풀어야겠다.
아직 그들의 손에 창칼이나 총포 같은 무기가 있을 리 없었다. 대부분 맨손이었고 근처 민가에서 아무렇게나 집어온 몽둥이나 낫, 식칼 등을 가진 자들이 몇몇 있었을 뿐이다. 군병들은 병조 판서의 집안 곳곳을 뒤져 그가 모은 재물을 마당에 쌓았다.
누구든 돈 한 푼, 물건 하나, 가져가는 자는 죽인다!
하고는 무더기로 쌓아올린 재물에 기름을 끼얹고 불을 질렀다. 목격한 자들에 의하면 비단 주옥 패물 농 등 호화로운 가장집물이 타오르는 불꽃에서는 오색이 영롱했고 인삼 녹용 사향이 타면서 풍기는 향기는 수 리 밖에서도 맡을 수 있었다고 하였다.
한편 허민, 김만복 등은 군병의 한 무리가 민겸호의 집을 들이칠 때에 노리고 있던 동별영 안으로 쳐들어갔다. 이미 운종가 일대는 군병들뿐만 아니라 행상 열립군이며 평소에 불만이 많던 성 내외의 가난한 백성들도 합세하여 누구도 그들을 제압할 병력이 없었다. 운현궁의 호종무사 허민은 군복을 입었지만 오래 전부터 시정 왈짜패들은 대원군 이하응의 낙백 시절부터 잘 알던 자들이 많았는데 백성들의 틈에 끼어 있었다. 군중은 동별영의 무기고에서 창과 환도와 쇠도리깨며 화승총과 양총까지 찾아내어 무장했다.
좌포청과 의금부 전옥서를 쳐라!
모든 죄수들을 석방시켜라!
동별영에서 무기를 갖추어 바로 지척에 있는 철물교를 향하여 내달으니 포도청 관문을 지키고 섰던 포졸들은 달아나고 안에서 수직하고 있던 포교들은 순순히 무기를 내던지고 난군이 시키는 대로 옥문을 열었다. 영장 김영춘, 별장 유춘길, 정의준 등 다섯 사람을 구출했고 옥문을 열어 모든 죄수들을 풀어주었다, 난군 중에는 옥에 갇혔던 죄수들의 가족들도 많이 끼어 있었다. 서일수 이신통도 그들 민간인 사이에 끼어 있었고 만일을 위하여 환도 한 자루씩 쥐고 있었던 것이다. 영장 김영춘은 옥에서 나오자 포도청 군관의 복장을 벗겨 전립과 전복을 걸치고 양총을 손에 쥐었다. 그는 김만복에게 명했다.
하도감을 치러 가자!
먼저 의금부와 전옥서를 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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