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홍대 앞을 가득 채운 여자들의 발이 색색의 장화로 알록달록한 것을 보았다. 장화의 디자인이 이렇게 다양할 수 있다니 나는 어느 순간 여자들의 얼굴보다 여자들의 발을 더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횡단보도 앞에 나란히 섰을 때 그 비교는 더 재미났다.
어떤 이는 정장에 굽이 높은 장화를 또 어떤 이는 캐주얼에 굽이 낮은 장화를, 저마다 어찌나 잘도 사서 잘도 신었는지 다들 개성이 넘쳐보였던 것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에게 장화란 특별한 신을 거리였음이 분명했다.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걸어가는 우산 셋 속 초등학생들이나 논일 하시고 소여물 먹이시고 갯벌에서 꼬막 캐고 주방일 하시는 분들의 검은 고무장화라면 모를까, 사람 만나는 일을 주로 해온 나 같은 직장여성에게 정장에 장화신기란 다분히 용기가 필요한 코디이긴 했으니까. 그런데 내가 달라진 것이다. 여성들이 달라진 것이다.
요 근래 정장에 운동화를 믹스매치 해 신는 여성들을 가리켜 일명 '운도녀'라 한다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정장에는 운동화와 백팩이라는 새로운 조합이 각광을 받으면서 별별 디자인에 별별 아이디어를 가진 상품들이 무더기로 쏟아지게 된 거라지. 아, 장화의 무한 변신 뒤에는 우리들의 간절한 요구가 있었겠구나. 내년에는 양복바지에 장화 신은 남자들 좀 보게 해주면 좋겠다. 비에 젖은 남편의 바지 밑단에 비에 젖은 남편의 구두를 말려야 하는 아내들의 수고로움을 덜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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