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정두언 의원의 체포동의안 부결로 위기에 몰린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13일 고심 끝에 내놓은 해법은 "평소 쇄신을 강조해 온 정 의원이 스스로 책임지고 해결하라"는 것이었다. 박 전 위원장이 정치 현안과 관련해 특정 의원을 지목해 압박한 것도, 정 의원에게 "법 논리를 따지지 말고 앞장서서 해결하라"는 강도 높은 주문을 한 것도 원칙과 정도를 중시하는 그의 평소 스타일에서 한참 벗어난 것이다.
이번 사태로 인한 박 전 위원장의 위기 의식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박 전 위원장은 새누리당이 국회 쇄신 공약 1호로 내건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 포기 약속을 스스로 뒤집은 모양새가 되면서 자신이 지켜 온 '신뢰' 이미지가 한순간에 '위선'으로 변질될 수 있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본 것 같다. 그가 대선의 주요 콘셉트로 잡은 정치 개혁과 쇄신을 사수하기 위한 선택으로도 볼 수 있다.
박 전 위원장은 이날 정 의원 사태 논의를 위해 잡힌 의원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대구ㆍ경북 방문 일정을 전날 전격 취소했고, 의총 참석 직전 기자들과 만나 작심한 듯 5분여 동안 조목조목 입장을 설명했다. 박 전 위원장은 "체포동의안 부결에 대해 국민들께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고 밝힌 뒤 곧바로 정 의원을 거명하며 강하게 압박했다.
이에 대해 한 친박계 인사는 "박 전 위원장은 어떻게 해서든 불체포 특권 포기 약속을 끝까지 지키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서 "국회에서 이미 체포동의안이 부결돼 현행법 상으론 방법이 없는 만큼 정 의원이 스스로 여론을 달래는 결단을 하라는 게 박 전 위원장의 요구"라고 말했다. 다른 친박계 의원은 "법 논리만 따진다면 임시국회가 끝나는 내달 3일 이후 검찰이 정 의원 구속영장을 재청구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겠지만, 그 때까지 기다릴 사안이 아니라는 게 박 전 위원장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박 전 위원장은 '정 의원이 탈당하라는 것인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엔 "탈당 그런 게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정 의원의 정신과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측근은 "정 의원이 제 발로 검찰에 나가거나 '나에 대한 수사를 즉각 계속하라'고 촉구하는 성명을 내는 등 불체포 특권 포기에 준하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 측근은"다만 구체적 지침을 내리면 역풍이 불 수 있는 만큼 정 의원에게 공을 넘긴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내 일부에서는 박 전 위원장의 해법이 '대선 승리'라는 기준에만 맞춰져 있고 국회법과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따라서 박 전 위원장의 정 의원 압박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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