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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에세이] 밥값 못 버는 뮤즈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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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에세이] 밥값 못 버는 뮤즈를 위해

입력
2012.07.13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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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23일 상오 6시 36분을 기해 우리는 인구 5,000만명을 기록, '2만 달러 소득에 인구 5,000만'이라는 '20-50클럽' 국가군에 성큼 진입했다. 일본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영국에 이은 7번째 쾌거로, 의당 자축해 마땅할 일이되 심기는 뒤틀린다. 왜냐교? '원고료의 정성'이란 제하의 글을 소개한다. 2010년 4월 16일자 한국일보 '길 위의 이야기'에 실린 시인 정일근 씨의 글이다.

"시인에게 원고료는 딜레마다. 답이 없는 '트리핀의 딜레마(Triffin's dilemma)'다. 내 첫 정식 원고료는 25년 전 신춘문예로 등단해 한국일보 '아침시단'에서 받은 3만원이었다. (당시)중학교 국어교사인 내 봉급의 10%에 해당하는 금액인 적지 않은 고료였다.(중략) 얼마 전 한 계간 아동문학 잡지에 동시를 두 편 발표했는데, 원고료 대신 발행인이 직접 경북 청도산 참깨로 짠 참기름, 콩으로 담근 된장, 반시로 만든 곶감을 보내왔다."

대한민국 시인의 현 주소다. 한국의 시인들 거개가 풍류(風流) 시인이다. '전업 작가'는 있지만 '전업 시인'은 아직 없다. 무슨 말이냐? 한국에서 시를 써 밥을 먹는 시인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1969년 1월, 양력 설 쇠고 첫 출근한 신문사가 한국일보였다. 한국일보가 창간 15년을 맞던 무렵으로 창업주 '왕초' 장기영 사주의 열(熱)과 기(氣)가 지면 곳곳에 흔근히 배어있던 때였다.

난생 처음 보는 신문사 편집국. 그 편집국의 생태를 꼬나보는 나의 시선에 제일 먼저 꽂힌 것이 신문의 문화면, 그 중에도 특히 매일 아침 유망주 시인의 시를 하루도 빠트리지 않고 1면에 싣고 있던 '아침 시단(詩壇)'이라는 컷이었다. 신문 1면에 시를 싣는 신문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더욱 놀란 건 매일 1면에 시와 이름이 실리는 그 시인들한테 당시 한국일보가 지급하던 상당 수준의 고료였다. 그렇다면 내가 입사할 당시의 그 한국일보. 시인한테 꼬박꼬박 고료를 지급할 만큼 한국일보 창업주 백상 장기영 사주가 그리도 거부였다는 말인가? 아니다. '왕초'가 세상을 등지고 20여년 지나 고인을 추모하는 100 편의 글이 '백인백상(百人百想)-부제: 뛰면서 생각했다'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적이 있다. 다음은 그 책에 실린, '왕초'살아생전 한국일보 문화부기자를 역임한 백우영 씨의 글이다.

"월급날 전 날이 되면 백상은 나를 이 곳 저 곳 은행에 끌고 다니며 돈을 꿨다. 때로는 은행장들한테 사정도 했다. 천하의 '왕초'가 저렇다니. '왕초'의 그 꼴이 나는 정말 보기 싫었다."

당시 시인들에게 넉넉히 지급된 고료. 이리 마련된 것이다. 돈은 많지 않되 대신 그 돈이 정확히 어디 쓰여야 할지를 왕초는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것이 바로 한국일보를 (당시)최고 부수의 신문으로 만든 것이다. 시인에게 소정의 고료를 지급하는 시대, 또 그런 나라야말로 영국의 경제학자 갈브레이드가 추구했던 '풍요로운 사회'에 딱 들어맞는다. '풍요로운 사회'란 시인에게 고료를 제대로 지급하는, 바로 그런 수준의 인문사회를 상징한다. 그런 사회가 바로 최고 최상의 사회다.

한편의 시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시상말고도 리듬과 운율이라는 음악적 요소가 따라야 하며 시와 가(歌)가 항상 붙어 다니는 단어임도 그래서다.

시인은 천상(天上)의 음악적 조화와 아름다움을 지상 사회에 앞질러 귀띔하는 뮤즈다. 밥 못 버는 뮤즈를 시인으로 예우하는 것이야말로 2만 달러 소득에 5,000만 인구를 지닌, 소위 '20-50 클럽'이라는 세계 6대 선진대열에 성큼 들어설 수 있는 입장권이다. '20-50'이라는 통계수치와 국민의 인문학적 수치가 일치하는 실명제 입장권 말이다. 시인 겸 극작가 하벨이 이끌던 체코처럼, 12월 19일 대선에서 우리도 그런 대통령 한번 갖는다면야 금상첨화고.

김승웅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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