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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주머니 속의 바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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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주머니 속의 바늘

입력
2012.07.13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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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의 의성 김씨는 임진왜란 시기의 학봉 김성일을 중시조로 하는 누대에 걸친 명문이다. 일제 강점의 말기, 그 양반집 자손으로 당대의 파락호 또는 난봉꾼 소리를 듣던 인물이 있었다. 밤낮 없이 노름판을 전전하며 전혀 가솔을 돌보지 않았고 배운 자로서는 물론 인간으로서의 위신도 지키지 않았다. 파락호란 별호를 얻기로는 조선조 말의 흥선군 이하응이 대표 격에 해당하는데, 그 정황은 유주현의 역사소설 <대원군> 에 매우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그런데 여기서 언급하는 의성 김씨 김용환은, 정도가 흥선군보다 훨씬 더했다. 종갓집을 남의 손에 넘기고 수백 년 동안 집안 재산으로 내려오던 전답 18만 평도 팔았다. 그 전답의 현재 시가는 200억 원에 이른다. 보다 못한 문중 자손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걷어 팔아먹은 전답들을 다시 종가에 되사주었으나 그는 탈선의 행각을 멈추지 않았다. 심지어 시집간 무남독녀 외동딸이 신행 때 친정집에 가서 장롱을 사오라고 시댁에서 받은 돈도 노름판으로 가져갔다. 딸은 할 수 없이 친정 큰어머니가 쓰던 헌 장롱을 가지고 울면서 시댁으로 돌아갔다.

김용환은 해방 이듬해 이순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그의 사후에, 경천동지할만한 사실이 밝혀졌다. 그는 강골의 선비였지 인격 파탄자가 아니었으며, 허황한 세월을 보낸 것이 아니라 일제의 이목을 속이고 숨어 활약한 독립 운동가였던 것이다. 노름판에서 돈을 따면 좋고, 잃으면 미리 잠복 중이던 수하들로 하여금 판돈을 강탈하게 하는 수법을 썼다. 노름 밑천으로 집과 전답을 판 돈도 모두 갈 곳이 있었다. 서슬이 시퍼런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가족에게도 철저하게 함구하였고 온갖 불명예를 뒤집어썼으며, 그렇게 모은 재물은 모두 만주 독립군의 군자금으로 넘어갔다.

학봉 종가의 13대 종손으로 선친과 형제들이 줄줄이 의병장 출신인 가문에서 특별 감시의 주목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으나, 그 자신과 가족의 고통을 후대의 안온한 자리에서 필설로 형용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임종할 때 독립군 동지가 머리맡에서 이제는 만주로 돈을 보낸 사실을 밝혀도 되지 않겠느냐고 물었지만 그는 허락하지 않았다. 선비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더 말할 필요 없다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그의 외동딸, 눈물의 장롱을 가져갔던 김후옹 여사는, 1995년에 이르러서야 아버지의 독립운동 공로가 인정된 건국훈장을 추서 받았다.

한 인간의 삶 속에 잠복해 있는 실체적 진실이란 이렇게 모질고 무서운 것이다. 더욱이 자신의 명예와 주변의 안위를 모두 저버려야 하는 경우에는 그 각박함의 강도가 훨씬 더할 수 밖에 없다. 재미 소설가 김은국이 써서 한국계 작가로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 후보에까지 오른 작품 <순교자> 에도, 이와 같은 '낭중지추'(囊中之錐)의 이야기가 매설되어 있다. 이 소설의 무대는 1950년 10월에서 그 다음해 5월까지이다. 인공치하 평양에서 기독교 목사 12명이 공산군에 의해 처형을 당했는데, 나중에 순교자로 미화된 이들이 실제로는 신앙을 포기하고 살려 달라 애걸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순교의 현장에서 혼자 살아남아 정신이상자가 되어 있는 신목사가, 실제로는 목숨을 구걸한 배교자가 아니라 신앙 양심으로 끝까지 저항한 유일한 목회자였다는 줄거리이다. 사건을 조사하는 이대위란 인물이 이를 밝히려 하지만 신 목사는 반대한다. 순교자의 현현에 감격해 있는 신자들에게, '성스러운' 거짓말로 절망이 아닌 희망을 남기려 한 것이다. 그러나 주머니 속의 바늘은 결국 밖으로 삐어져 나오게 마련이다.

김용환 공의 예화, 그리고 소설 속 신목사의 희생이 언표 하듯이, 우리 시대의 많은 이들이 감싸둔 주머니 속의 바늘들도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선거의 계절이 다가오면 더욱 더 그러할 터인데, 우리 인생의 소중한 타산지석 하나를 파락호로 자신을 위장했던 애국지사 김용환 공에게서 보았으면 싶다.

김종회 경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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