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자들이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고, 행사하는 전 과정을 꿰뚫는 제1의 법칙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권력을 결코 손에서 놓으려 하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권력의 맛은 절대 그것을 포기할 수 없게 만든다. 재테크 내지 치부의 기본은 돈을 꽉 움켜쥐고 놓지 않는 것이라고들 한다. 흔히 경기가 안 좋아지면 부자들 보고 지갑을 열어라 어째라 하지만 그들이 바보인가, 부자들이 유일하게 믿는 것은 절대로 자본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것뿐이라는 말이 있다. 권력도 마찬가지다.
국회가 저축은행 금품 수수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키면서 권력의 제1 법칙을 보란듯이 실감시켰다. 여야 정치권은 지난 총선을 앞두고 의원 불체포특권 포기를 공언했고, 19대 국회 개원이 늦어지자 의원에게도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해 세비를 반납하기로 하는 등 잇달아 특권 포기를 다짐했다. 하지만 정 의원 체포동의안은 새누리당은 물론 민주당 의원들까지 반대에 가세해 찬성 74 대 반대 156이라는 압도적인 표 차로 부결됐다. 의회 권력이 똘똘 뭉쳐 동료 의원 구하기에 나선 셈이다. '방탄 국회'라는 말이 더 이상 어울릴 수 없다.
정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 사태로 여당에 후폭풍이 불었다느니 대선 가도에 악재가 생겼다느니 하는 정치적 이해타산은 언급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부결 사태의 형식적인 면만 보더라도, 새누리당 쇄신파 의원 등 일부가 체포동의안에 반대한 논리는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다. 그들은 반대 이유로 무죄 추정의 원칙을 들면서, 영장실질심사도 하기 전에 국회가 체포동의안을 처리한다면 이는 정 의원의 혐의 내용을 알지도 못하면서 구속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는 논리를 폈다. 정 의원도 영장실질심사에 자진 참석하겠다는 뜻을 밝혔는데도 강제 구인하도록 규정한 현행 형사소송법에 문제가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무죄 추정의 원칙은 당연히 일반인뿐 아니라 의원에게도 적용되어야 할 대원칙이다. 그런데 영장실질심사를 의무화한 2007년 개정 형사소송법 규정은 바로 그 원칙에 바탕해 피의자 인권 보호 차원에서 마련됐다. 종전에는 피의자와 가족 등이 요구할 경우에만 영장실질심사를 받을 수 있었지만, 무죄 추정의 원칙에 근거해 모든 피의자가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해서 스스로를 변호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였다. 정 의원의 경우 영장실질심사에서 자신의 무혐의를 주장할 수 있었던 셈이다. 문제는 영장실질심사가 의무화되면서 자발적인 출석자도 강제 구인 절차를 밟게 된 데 있다. 이것도 사실상 인신 구속이다. 인권 보호를 위해 만든 법이 인신 구속을 의무화하는 모순을 안게 된 셈이다. 정 의원과 체포동의안에 반대한 의원들은 따라서 형사소송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 논리에는 커다란 허점이 있다. 그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입법부의 의원이다. 현행 법에 모순이 있다 해서 의원이 그 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도대체 누가 법을 준수할 것인가. 영장실질심사에 당당하게 나가서 무혐의를 입증하고 법의 문제점은 입법부가 바로잡으면 되는 것이지 왜 스스로 공언했던 불체포특권 포기 약속을 뒤집어야 하는가. 아마 이것이 이번 사태를 보는 일반적인 국민의 법감정일 것이다.
정 의원은 현 정권의 개국공신으로 불리는 인물이자, 여당 내에서 이상득 전 의원 불출마 요구 등 이른바 쇄신 목소리를 내온 이들의 선두에 있었다. 그런 그가 이 전 의원과 공범관계로 저축은행 비리 연루 혐의를 받아 이번 사태를 촉발시켰을 만큼, 저축은행 비리는 끝간 데를 모르고 터져나오고 있다. 이들에 이어 이명박 대통령을 15년 간 지근에서 보좌해온 김희중 청와대 제1부속실장도 저축은행 금품 수수 의혹이 일자 사의를 표명했다. 이들처럼 권력 핵심부는 못되지만 그 영향권에 있었을 공직사회나 금융당국 주변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지 상상도 잘 안 된다.
한번 권력을 맛보면 절대로 놓지 않으려 한다는 게 권력의 첫번째 법칙이라면, 그런 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는 금언도 그못지않은 법칙임을 이 정권은 입증해 보이고 있다. 권력의 획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몹쓸 법칙들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것임을 쓰디쓴 교훈으로 던져주고 있다.
하종오 부국장 겸 사회부장 joh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