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뮤니스트/로버트 서비스 지음ㆍ김남섭 옮김/교양인 발행ㆍ824쪽ㆍ3만6000원
비틀스가 1968년 발표한 '혁명(revolution)'은 이렇게 시작한다. '너희들이 바라는 것은 혁명인가/ 아 그런가/ 누구라도 세계를 바꾸고 싶어야 하지/…그렇지만 파괴는 사양해/ 그런 것과는 함께 할 수 없어/ 세상일이란 자연히 좋아지는 거야' 존 레논이 곡을 쓸 때 공산주의를 염두에 둔 건 아니지만, 그의 노래는 마치 열병과도 같이 세계를 휩쓸었다가 100년이 안돼 사그라지고 있는 공산주의를 향한 것처럼 들린다.
레닌, 스탈린, 트로츠키 평전 등 러시아 혁명사 연구에서 업적을 낸 로버트 서비스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가 <코뮤니스트> 에서 그려내는 것도 바로 현실 공산주의 운동의 이런 속성이다.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간다는 유토피아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실제 공산주의 국가가 보여준 독재와 폭력 그리고 억압, 반목과 갈등의 모습 말이다. 코뮤니스트>
책은 모두 40장으로 나눠 시기적으로는 마르크스 이전 혁명 사상가에서부터 21세기 공산 국가까지 지역으로는 옛 소련에서 동유럽, 아시아, 남미, 자본주의의 아성인 미국과 서유럽에서 지금까지 존재했었고 존재하고 있는 모든 공산주의 이야기를 아우르고 있다. 역사적인 사실을 간추리고 간추린 인상이 농후한데도 책이 방대한 것은 이 이야기가 애당초 책 한 권으로 끝낼 일이 아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마르크스주의라는 이념을 현실로 빚어낸 낸 레닌 이후 공산주의는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났다. 제2차 대전 이후 소련의 지배권 아래서 동유럽이 줄줄이 공산화하고, 중국이, 북한이, 쿠바가 공산화하는 과정은 같은 듯 다르다. 도시화가 진행돼 노동자 인구가 충분한 나라가 있는가 하면 농업국가에서 혁명이 성공한 사례도 적지 않다.
그런데 왜일까. 공산주의 정권이 성립된 나라들에서는 마치 똑 같은 일이 반복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이유를 저자는 소련에서 일어난 일이 약간 변형되어 모든 공산주의 국가에서 되풀이되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지도자들은 대중을 위해서는 저렴하지만 우중충한 소비재 생산 계획을 짜면서 자기들은 그보다 나은 생활 조건을 누렸다. 패션은 수수한 것이 모범이었고, 성적 매력은 극도로 억제되었다. 불평이 생활의 한 방식이 되었고, 독재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밀고가 장려되었다.
소련식 노동수용소 역시 공산주의 세계 전역에 도입되었다. 이런 식의 강제 수용ㆍ노동은 역사 속에 사례가 많지만 공산 국가의 경우는 좀 유별났다. 제대로 된 법적 평가 없이 단지 계급이 다르다는 이유로, 종교를 믿었다는 이유로, 지식인 성향이 있다는 이유로 그곳에 보내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겉으로만 체제에 동의했고 사회에는 속임수와 회피, 허위 보고가 만연했다. 국영기업체에서 물건 훔치다가 붙잡힌 노동자들은 관리자들이 엄청난 횡령을 하고 있다고 항변한다. 폴란드 철도원들은 난방을 위한 석탄을 배급 받지 못하자 "우린 훔칠 거요"라고 큰소리칠 정도였다.
물론 이보다 훨씬 강렬하게 수많은 사람의 머릿속에 공산주의를 부정적으로 각인시킨 것은 스탈린이 본을 보였고 폴 포트에서 극한에 달했던 대량 학살이다.
그렇다고 공산주의 사회에서 개선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중국에서는 모든 주민들이 자전거를 갖게 되었고 모든 사람들이 이용 가능한 공원이 만들어졌다. 국가 보건과 교육이 무료로 제공되었다. 주택과 식량 가격이 내렸고 기대수명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여성들에게도 일자리가 개방되었다. 동유럽까지 포함해 공산주의 국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생필품을 쉽고 싸게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공식 정책이었다. 물건은 쌌지만, 다만 구하기 너무 어려웠을 뿐이다.
소련과 동유럽의 공산 체제 붕괴 이후 쏟아져 나온 수많은 자료를 이용해 치밀하게 공산주의 국가의 문제점을 지적해 나가는 이 책은 다분히 보수적으로 느낄만하다. 하지만 저자는 20세기에 벌어진 모든 비인도적인 행동을 공산주의자들이 저지른 것은 아니라고 말하며 균형 잡힌 학자의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나치스의 유대인 탄압, 아프리카의 집단 학살은 공산주의와는 무관하다. 베트남과 캄보디아의 숲을 에이전트 오렌지와 네이팜탄으로 초토화한 것은 미군이고, 브라질과 인도네시아의 열대우림을 파괴한 것은 자본의 탐욕이다.
저자는 공산주의 체제가 사라지고 있을지 몰라도 그것을 초래한 자극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정치 경제적인 억압은 광범위하고, 민족적 사회적 종교적 박해는 지속되고 있다. 소수 강대국에 의한 이기적인 세계 지배도 여전하며, 생명이나 신체의 안전, 교육의 기회, 식량, 주택, 고용의 보장을 수십억 사람들이 필요로 한다. 전세계의 3분의 1이 휩쓸려든, 현대사의 가장 큰 사건이라고 해도 좋을 공산화만큼은 아니더라도 급진적인 운동이 일어날 여지는 지금도 충분하다. 이슬람 테러리즘이 바로 그런 경우다. 공산주의를 증오한 무솔리니나 히틀러처럼 빈 라덴까지 공산주의의 세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그는 말한다. 이데올로기와 정치는 바이러스처럼 돌연변이를 일으켜 확산되기 때문이다. 공산주의는 죽지 않고 사라졌을 뿐이다.
책에서 파노라마 같이 펼쳐지는 공산주의 근ㆍ현대사는 흥미진진하기 이를 데 없으나 너무 많은 사건들이 펼쳐져 혹시 따라가기 버겁다고 느낄 독자가 있을 지도 모르겠다. 번역투 문장도 독서를 방해한다. 하지만 아옌데의 연립정부가 공산주의자들이 이끈 것이 아니라는 주석까지 달아주는 역자의 꼼꼼함은 평가 받을만하다. 러시아사를 전공한 역자는 후기에서 이 책의 저자가 "동유럽 국가는 물론이고 서유럽 국가와 미국 등 소련 이외의 지역에서 펼쳐진 공산주의 운동들을 대체로 모스크바의 결정에 좌우되는 친소련 세력이 지배한 것으로 그리고 있다"며, 균형 잡힌 평가를 위해 공산권의 내재적 발전이나 자율적 사회 움직임을 조명한 1980년대 이후 수정주의학파의 연구 성과를 같이 살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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