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를 수식하는 말 가운데 가장 빈번했던 건 '조숙'이란 단어였다. 애가 눈치가 빤해서 어른들 속내를 갈고리로 파듯 그런다고 아줌마 아저씨들은 별로 나를 예뻐해주지 않으셨다. 종합선물세트를 안겨주면 90도 인사하기 바빴던 동생들에 반해 나는 일단 계산기부터 두드렸으니까.
누구는 무얼 사왔고 누구는 얼마 사왔으니 언젠가 사례를 하게 될 때 그 정도에 맞추자고. 그런 계산이 빨라 나는 내 머리가 비교적 좋을 줄로만 알았다. 생활기록부에 적힌 내 아이큐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사실 머리가 나쁜 게 죄는 아닌데 나는 왜 남들보다 낫다 싶지 않을 때 왜 그리 부모에게 미안했을까.
하루는 학교에서 채변봉투를 가져오라고 했다. 날짜에 맞추지 않으면 행동발달사항 가나다 중 다를 주겠다던 선생님이셨다. 고질적인 변비였던 나, 똥은 마렵지가 않고 '다'를 기록하긴 더더욱 싫고... 머리를 굴리는데 집에 놀러왔던 동네 아줌마가 배를 쥐고 화장실로 뛰어가시는 거였다.
아 저거다! 행동발달사항 가에 동그라미가 쳐졌으나 그로부터 한 달 뒤 양호실에서 대성통곡하는 내가 있었다. 세상에나 십이장충이라뇨. 양호 선생님은 구충제 두 알을 내 앞에서 먹어야 보고가 된다고 하고, 그제서야 나는 그 변은 내 변이 아니라며 떼를 써대고 아 담임선생님은 모나미 볼펜으로 꼭꼭 그렇게 눌러써야 하셨을까. 그 뒤로 나는 점수에 연연할 줄 모른다. 그 덕에 시인이 되었나보다.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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