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 입구부터 혈흔이 있고 혈흔의 방향성을 볼 때 대문에서 1차 폭행을 한 뒤 방 쪽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입니다. 마당 입구에는 피가 많은데 방까지 가는 거리엔 피가 없습니다. 지혈을 했다는 것이죠. 또 피고인이 남긴 족적을 보면 수 차례 범행 당시 집 안을 들어갔다 나왔다 했습니다. 훔칠 물건이 없는데도 반복해 오갔다는 것으로 미루어 면식범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6월 4일 창원지법에서 국민참여재판이 진행됐다. 작년 11월 경남 고성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의 피의자 백모씨에 대한 1심 재판에서 경남청 과학수사계 손부남(38)경사는 면식범이라는 증거가 무엇이냐는 변호사 질문 받았고 살인현장에서 발견한 혈흔과 족적을 분석한 자료를 바탕으로 답을 했다. 징역 15년. 피고인은 끝까지 자신이 범행 현장에 없었다며 무죄를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현장 감식을 토대로 증언한 경남청 과학수사계의 판단을 받아들였다.
손 경사는 "과거에는 범죄가 발생하면 단순히 신원확인, 지문 검색이 전부였지만 지금은 범죄 행위를 다각도로 분석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범죄유형이 다양해지고 피의자, 피해자의 인권이 중요시 되면서 범행 현장을 수사하는 수사관들의 능력도 한층 중요해졌다. 때문에 전국의 과학수사 담당 경찰관들을 교육하고 체계적인 검증 방법을 알려주는 경찰수사연수원의 역할이 주목 받고 있다.
지난 6일 서울 휘경동 경찰수사연수원 3층 실습실에는 전국의 지방청과 경찰서에서 온 20명의 과학수사 경찰관들로 붐볐다. 실습실에는 실제 범죄 현장을 재구성해 만들어 놓은 방이 4곳에는 혈흔과 범죄 도구들, 범인의 족적 등이 실제 범죄현장처럼 재구성 돼 있었다. 교육생끼리 조를 짜 모의 현장을 보고 당시 상황을 재현하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됐다. "다량의 피가 있는 것으로 보아 세면대 앞에서 1차 범행이 이뤄졌을 것으로 보입니다. 2차로 피해자가 벽에 머리를 부딪쳐 쓸린 자국이 있습니다. 피 묻은 머리카락의 모양이 발견됐으니까요. 그리고 족적에 묻은 혈흔을 봤을 때 범인은 입구로 도망갔다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다시 한 번 피해자 쪽으로 왔다가 장소를 떠난 흔적이 있습니다." 실습 현장인지 실제 현장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참여자들은 날카로운 분석을 내놓았다.
이날 혈흔형태분석 전문가 5기 교육생 20명을 직접 교육한 서문수철(43) 교육관은 2009년 1기 교육을 받고 혈흔분석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그는 "교육에 가장 강조하는 것이 어떤 범행도구를 썼는지 먼저 파악하는 것"이라며 "범행 현장에서 수사관의 역할은 편견을 갖지 않은 채 범행에 쓰인 도구, 혈흔을 용의자 진술과 대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교육을 참가한 대구 수성경찰서 유경진(40)수사관은 "10년째 과학수사를 하고 있지만 실습교육을 통해 현장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한다면 범인이 남긴 증거들을 알아채기 힘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아시아 유일의 수사전문교육 기관이다 보니 외국에서도 연수원을 찾는 사례가 늘고 있다. 6월에는 몰디브 등 7개국에서 14명의 수사경찰관들이 한국의 과학적 수사 기법을 배우기 위해 연수원을 찾는 등 올해에만 50여명의 외국 경찰관들이 이곳에서 연수를 받았다. 2007년 개원한 경찰수사연수원은 연간 2,900여명의 전국 경찰관들에게 전문 수사과정을 교육한다.
김현빈기자 hb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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