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재미교포가 234억원의 복권에 당첨됐지만 당첨금 전부를 8년 만에 탕진하고 친구의 집에서 기거하며 국수와 야채로만 연명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언젠가부터 거액의 복권에 당첨된 행운아가 한 순간에 길거리로 나앉았다는 뉴스가 낯설지가 않다. 내 집 마련의 부푼 꿈과 희망을 담고 있던 복권이 어느 순간부터 비극의 서막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로도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이런 차가운 시선에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당첨금의 분할지급이라는 혁신적인 상품 '연금복권'이 출시되면서부터다.
복권 반대론자들은 복권 자체가 비윤리적이며 노동 윤리를 약화시키고 '일확천금', '대박' 등의 심리로 사행성을 조장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또한 복권을 구입하는 계층이 상대적으로 저소득층이기 때문에 서민들의 주머닛돈으로 공공기금을 조성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다. 일부 언론은 정부가 로또 열풍을 재연하기 위해 연금복권을 출시해 사행심을 조장하는 한편 노후불안 심리를 이용해 손쉽게 세수를 충당하고 있다고도 비판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본다. 지난 연말에 발표된 복권 인식조사에 따르면 실제적으로 복권은 사행산업 중에서도 중독성과 사행성이 가장 낮으며, 월 평균 400만원 이상 소득계층에서 오히려 복권 구매율이 높은 것으로 확인돼 복권 반대론자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또한 국내 복권산업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2분의 1, 아시아 국가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반면 중독성이 강한 다른 사행산업은 OECD 국가의 1.2배, 아시아 국가의 2배가 넘는 높은 수준이므로 복권 총량에 대한 규제는 오히려 복권이 주는 다양한 이점을 고려했을 때 풀어줘야 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4년부터 복권판매 수익의 40% 이상을 복권기금으로 조성해매년 1조원대의 기금으로 다양한 공익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작년에는 총 1조 2,022억원의 복권기금이 조성돼 전년도에 비해 29% 가량 늘어났다. 이는 연금복권의 성공적인 출발이 더 많은 공익사업을 전개할 수 있는 발판으로 작용했다고도 풀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연금복권은 작년 7월 출시 이후 연속해서 24회가 매진되면서 복권 판매 사상 유례 없는 진기록을 보였다. 그동안 판매된 연금복권을 연결하면 지구를 한 바퀴 돌고도 남을 정도라고 하니 충분히 성공적인 안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폭발적인 반응으로 인해 일각에서 우려를 나타내고 있지만 오랫동안 복권산업을 연구해 온 필자의 판단은 기우라는 것이다.
연금복권은 연금식 당첨금 지급이라는 상품의 특성상 그동안 거액의 복권 당첨자들이 보여 왔던 부작용을 충분히 상쇄시키고, 안정적인 생활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적합하다. 소비자들은 이러한 연금복권에 매력을 느끼고 소비할 것이며, 이 판매액은 다시 도움이 필요한 계층에 소중하게 쓰이는 선순환이 이뤄지는 것이다. 이렇게 복권을 구매하는 사람과 당첨된 사람, 기금의 수혜대상자 모두에게 희망과 기쁨을 안겨주는 복권산업을 단순히 사행산업으로 분류돼 있다는 이유 하나로 사실과 다른 주장을 근거삼아 총량을 규제하고 발전을 저해시키는 점은 참으로 아쉽게 생각한다.
희망과 행복의 나눔으로 통하는 복권의 의미를 연금복권의 출시 1주년을 맞아 다시 한 번 되짚어보았으면 좋겠다.
이연호 충북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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