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하 기대감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지난달 통화정책의 방향 선회 가능성이 언급된 데 이어, 글로벌 금리 인하 공조 필요성도 제기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분기 실물지표를 확인한 뒤 8, 9월 쯤에나 인하에 나서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당연히 12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전격적인 금리 인하 배경을 둘러싸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1. 경제가 얼마나 나쁘길래
유럽 재정위기의 장기화는 충분히 예견된 것이었다. 그런데도 한은이 시장 예상보다 빨리 금리 인하에 나선 것은 국내 실물경기 침체가 훨씬 심각하다는 얘기다. 김중수 총재도 이날 금리 인하 배경으로 "실제 성장률이 잠재 성장률을 밑돌아 경기 침체가 예상되는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점을 몇 차례 강조했다. 13일 한은이 발표하는 하반기 경제전망도 매우 어두울 것으로 보인다. 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환호하기는커녕 오히려 실망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41포인트 급락하며 1,800선을 내줬고, 원ㆍ달러 환율은 달러당 10.6원이나 치솟았다.
2. 정부와의 대립이냐 공조냐
최근 정부 내에선 금리 인하에 부정적인 뉘앙스의 발언이 이어졌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가계부채 문제에 대해 한은도 공조해야 한다"며 금리 인하에 반대하는 듯한 발언을 했고,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제통화기금(IMF)이 권고한 내용(정책금리 유지 적절 등)이 있으니 그런 점 등을 감안해 금통위가 현명하게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금리 인하가 한은이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것으로 비춰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오히려 정책 공조의 성격이 짙다는 관측이 좀더 우세하다. 시중은행 한 임원은 "정부가 균형재정의 족쇄에 묶여 경기 부양 카드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한은이 금리 인하로 공조에 나선 것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3. 아직도 금리 정상화 중?
1년 넘게 금리 동결 행진을 이어오면서도 김 총재는 줄곧 "금리 정상화 기조는 유효하다"고 밝혀왔다. 6월 금통위에서도 "금리에 관한 기조를 변화시킬 만한 특별한 사유를 아직 찾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불과 한달 뒤 한은은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그런데도 김 총재는 "단지 경기순환적인 측면에서 (일시적 대응을 위해) 금리를 인하한 것일 뿐, 통화정책이 기조적으로 변한 것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시장의 반응은 냉랭하다. 외려 하반기에 한 두 차례 금리를 더 내리는 금융 완화 국면으로 180도 전환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채권시장 한 관계자는 "더 이상 금리 정상화 기조를 운운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4. 시그널은 충분했나
분명 6월 금통위에서 금리 정상화 기조에 변화가 있을 수 있음을 내비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당장 7월 금리 인하를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장단기 금리 역전도 7월 인하를 염두에 둔 현상은 아니었다. 김 총재의 고질병인 소통 부재에 대한 지적이 다시 제기되는 이유다. 한 증권사 채권애널리스트는 "왼쪽 깜박이만 겨우 껐을 뿐 오른쪽 깜박이를 제대로 켜지 않은 채 곧 바로 우회전한 격"이라고 꼬집었다.
5. 효과 vs 부작용
김 총재는 선제적인 금리 인하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특히 금리를 0.25%포인트 내리면 올해 성장률이 0.02%포인트, 내년에는 0.09%포인트 높아진다는 분석 결과까지 내놓았다. 금리 인하로 가계부채 부담도 줄어들 거라고 했다.
하지만, 부작용 우려도 만만찮다. 우선 대출금리 인하로 이미 9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가 더 늘어날 공산이 크다. 당장 대출자의 금리 부담을 줄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뇌관을 더 키우는 격이다. 소비자물가도 2%대 초반으로 안정됐다지만, 높은 기대 인플레이션율 탓에 마냥 안심할 수만도 없다. 그간 말 뿐인 금리 정상화로 금리 인하 여력이 충분치 못한 상황에서 추가 악재가 터졌을 경우 정책 대응 여력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도 큰 부담이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