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속 소리를 들으면 어디가 아픈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의사는 환자의 몸에 청진기(聽診器)를 댄다. 의사는 무엇을 고민하는지, 환자는 무엇을 아쉬워하는지 의료 현장의 소리를 귀담아 들어보는 새 칼럼 '청진기(聽診記)'을 13일부터 격주로 연재한다.
"나는 1등급이다"
그는 스스로를 '지방 의사'라고 소개했다. 3년 전만 해도 '서울 의사'였던 그가 주변의 만류를 뒤로 한 채 홀연히 지방으로 내려간 이유는 간단했다. 더 많은 환자를, 더 잘 치료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되레 치료 제대로 못하는 의사로 낙인 찍히고 말았다. "억울하고 황당하다"고 했다.
인제대 해운대백병원 김진복 기념 위암센터 및 로봇수술센터 서병조 소장(대한위암학회 이사)은 위암과 싸우는 외과의사다. 10여 년간 몸 담았던 서울백병원에서 그가 수술한 위암 환자는 1,000명이 넘는다. 그 환자들의 5년 생존율은 평균 위암 1기 92.7%, 2기 82.3%, 3기 67.2%, 4기 24.2%다. 수술 후 30일 내 사망률은 0.9%다. 또 수술로 잘라낸 림프절은 평균 48개다. 얼마나 많은 림프절을 잘라냈는지는 위암 수술 실력을 따지는 자료로 종종 이용된다. 평균 25개가 넘으면 잘 한다고 본다. 수치가 말해주는 그의 '성적'은 우수하다.
하지만 이른바 '빅5' 병원으로 환자가 몰리면서 그가 일하던 병원에는 환자가 점점 줄었다. 병원 재정이 어려워지니 좋은 치료장비를 기대하는 것도 무리였다. 때마침 부산에 해운대백병원이 생겼고, 로봇수술장비까지 들여놨다. 맥없이 환자를 뺏기고 있는 편보다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어 고민 끝에 2010년 해운대백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옮겨간 병원에서 그는 2년여 간 총 310건의 위암 수술을 했다. 심혈관질환 등 위암 말고 다른 원인 때문에 수술 후 30일 안에 사망한 환자 비율은 0.96%를 기록했다. 수술 합병증 때문에 사망한 환자는 없다. 덕분에 환자도 점점 늘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난 5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이 병원의 위암 수술 성적을 2등급으로 매겼다. 구분이 1, 2등급뿐이니 '잘한다'와 '못한다' 중 '못한다'가 된 셈이다. 심평원이 평가에 쓴 자료는 2010년 1년간 위암 수술 실적이다. 당시 이직 초기였던 그는 실제 많은 환자를 보지 못했다. 이 병원의 2010년 실적은 과거 의료진 기록이 대부분이었다. 그 의료진은 이듬해인 2011년 모두 퇴사했다. 결국 자신이 하지도 않은 수술 때문에 그와 그가 이끄는 위암센터 이미지는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우려했던 대로 심평원 발표 다음 달 그의 수술 환자는 3분의 1로 급감했다. 같은 지역에서 1등급을 받은 다른 중소병원은 환자가 늘기 시작했다. 심평원 발표 직후 의료계에서는 병원 말고 의사별 평가가 더 의미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는 "수술 건수도 적고, 위험한 수술을 피하면 당연히 1등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제한된 자료만으로 이뤄진 성급한 평가의 피해는 결국 환자들에게 돌아간다"고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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