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두를 몰아낸 세계보건기구(WHO)의 다음 목표는 소아마비다. WHO가 20여년째 백신 보급 캠페인을 하면서 1980년대 연 35만건이던 전세계 소아마비 발병 건수는 600여건으로 감소했다. 소아마비 퇴출이 이제 목전에 다가와 있는 셈이다. 그러나 뉴욕타임스(NYT)는 10일 소아마비 퇴치 작전이 엉뚱하게도 오사마 빈 라덴 사망 이후 악재를 만났다고 보도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백신 사업으로 빈 라덴의 DNA를 수집, 그의 거처를 확인한 데 따른 부작용이다.
미군은 지난해 5월 파키스탄 의사 샤킬 아프리디를 고용해 위장 예방접종 작전을 폈다. 아프리디는 빈 라덴의 은신처에 있던 어린이에게 B형 간염 백신주사를 놓아주며 혈액을 채취해 CIA에 넘겼다. CIA는 이 혈액의 DNA를 분석해 이 어린이가 빈 라덴의 혈족임을 알고 그의 은신처를 급습했다.
그러나 빈 라덴 사실 이후 엉뚱하게도 '백신 사업은 어린이를 불구로 만드는 서방 음모' '백신에 에이즈 바이러스가 있다'는 등의 소문이 확산됐다. 이로 인해 야기된 백신 거부 사태는 지난해 7월 CIA가 빈 라덴 제거에 백신 사업을 이용한 사실이 폭로되며 최악에 달했다. 파키스탄 사법부는 올해 5월 아프리디에게 반역죄를 적용, 징역 33년형을 선고했다.
이런 와중에 백신 거부가 계속되자 구호단체들은 작전을 주도한 데이비드 페트레이어스 CIA 국장에게 항의했다. 하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소아마비 발생 건수도 증가세로 돌아섰다. 지난해 파키스탄에서는 2000년대 들어 가장 많은 198건의 소아마비가 발생했다.
보건단체들은 소아마비 바이러스가 타지키스탄, 중국 등 접경 지역으로 확산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WHO 등 국제기구들은 사태 진정을 위해 이슬람 성직자들이 나서 백신의 안전성을 알려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달 말 파키스탄 와지리스탄 지역 탈레반 지도자들은 미국의 무인기 공격이 중단될 때까지 백신 사업을 금지하기로 하는 등 이 문제를 정치화하고 있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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