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 어린이집. 벽에는 3~5세 아이들이 고사리 손으로 그린 달팽이 그림들이 잔뜩 걸려 있다. 그림 아래에는 윌리엄(William), 세리나(Selena), 조엔(Joan), 에디슨(Edison) 등 영어이름이 적혀있다. 김모(34) 교사는 "아이가 크면 국제학교에 진학시키고 유학도 보내겠다는 부모가 많아 어렸을 때부터 영어 이름을 함께 쓴다"고 말했다.
세계화 시대에 자녀에게 우리 이름과 함께 영어식 이름을 지어주는 부모들이 늘고 있는 게 요즘 추세. 대체로 윌리엄이나 세리나처럼 귀족적 이미지를 풍기는 영어식 이름을 짓는 경우도 있지만 서구 문화를 잘 모르다 보니 엉뚱한 이름을 짓는 경우도 많다. 대표적인 예가 루피(Lupi), 티퍼(Tipper). 영어권에서 주로 애완동물에게 붙이는 이름이다.
요즘 새롭게 나타나고 있는 유행은 동양식 작명법을 적용해 영어식 이름을 짓는 경우다. 영어 식 이름의 어원을 풀이해 음양오행에서 말하는 목화수금토에 대입하는 방식이다. 회사원 김교광(35)씨는 지난달 28일 태어난 셋째 딸(1)의 영어 이름을 루시(Lucy)로 하기로 결정했다. 딸 아이의 사주에 음양오행에서 말하는 '금'이 부족한 만큼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영어식 이름을 지어줬다. 김씨는 "이왕 영어 이름을 짓기로 한 만큼 아이에게 좋은 의미를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물과 관련 있는 지혜의 뜻이 있는 소피(Sophie)는 '수'가 부족한 사람에게 작명한다는 것이다. 영어식 이름도 작명해주고 있는 박상원 베이비네임스 대표는 "요즘 부모들은 아이가 전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길 바라는 마음에 작명을 신청할 때 영어 이름도 함께 부탁하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에서 23년간 작명소를 운영한 방모(72)씨는 "이름을 지을 때 사주팔자를 풀이해 단순히 뜻에 맞는 글자를 대입하는 게 아니라 훈과 음을 모두 고려해야 제대로 이름을 지을 수 있다"며 "작명에 외국어는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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