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소주와 맥주병에서도 '주폭'을 주의하는 스티커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주폭'이라는 이 말은 아무나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서울경찰청장이 이 단어를 상표 등록까지 했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의 열렬한 캠페인과 각 대학과 지역 경찰서의 MOU등으로 어느 새 우리 귀에 익숙해진 '주폭'은 알다시피 '주취 폭력배'의 준말이다. 술을 마시고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을 잡아내자는 것인데, 벌써 서울에서 실시 한 달만에 100명의 주폭을 잡아들였다고 한다. 경찰서마다 주취특별팀이 만들어져 성과를 위해 열심히 주폭들을 잡아들이고 있다니 실적을 올려야 할 일선 경찰이 힘들겠다 싶어 안쓰럽다. 세상에 취객 대하는 것처럼 곤란한 일이 없으니 늘 주폭을 상대하려면 얼마나 난감하겠는가. 서울경찰청장은 주폭 1,000명만 잡아들이면 서울이 싹 달라질 것이라고 한다.
이번 단속은 주로 영세한 소규모 자영업자에게 술값을 내지 않거나 난동을 부려 피해를 입히는 주폭을 잡아들이는 것이라니, 술값 떼먹은 적은 없는 나는 일단 안심했지만 마음 놓긴 이르다. 뉴스를 찬찬히 보니 100명의 주폭에게는 평균적 모습이 있다. 주폭들의 평균 연령은 48세, 직업은 없고 전과 26범이다. 서울경찰청이 한 달간 잡아들인 100명 중에는 노숙자가 상당수였다. 무직자가 82명이었고, 나머지도 막노동이나 폐지를 줍는 일을 하는 등 극빈층이었다. 1호 주폭 구속자는 5월 16일 동대문서에 구속된 이 모(47)씨였다. 이 씨는 "몸이 아픈데 장애인 판정을 내주지 않는다"며 지역 주민센터에 찾아가 상습적으로 공무집행을 방해한 혐의다.
이쯤 되면 주폭들의 모습이 슬슬 눈앞에 그려진다. 오십이 다 된 초로의 사내, 무직이거나 고물을 주워 생계를 연명하니 차림새가 멀쩡할 리 없는 남루한 이 사람은 영세한 가게에서 술값을 내지 않고 폐를 끼친다. 한 마디로 누구라도 싫어할 사람이 주폭인 것이다. 한 발자국 더 나아가면, '주폭'들은 누구나 마음속으로 경멸했음직한 무능한 아버지를 닮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버지였으므로 대놓고 멸시하지 못했으나 아예 범죄자의 몽타쥬까지 나온 주폭들은 마음껏 미워해도 상관없다. 사회가 이들을 마음 놓고 미워하라고 부추길 뿐 아니라, 성공이 미덕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주폭의 평균적 모습의 묘사는 '루저'의 초상이기 때문이므로 경멸받아 마땅한 존재다. 유능한 아버지들은 절대 잡혀가지 않는다. 주폭이냐 아니냐, 잡아들이냐 마느냐를 판가름하는 데는 이들이 만만하냐 아니냐가 어느 정도 작용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한 예로 새누리당 수석 전문위원이 5월 18일 밤 12시쯤 술에 취해 경찰에게 폭행과 폭언을 한 혐의로 서울 마포경찰서에 불구속 입건됐다. 그는 만취 상태로 택시기사와 시비를 벌였다. 주폭이 지탄받는 이유인, 영세한 사업자에게 피해를 입힌다는 기준에 바로 들어맞는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욕설을 퍼붓고 지구대로 연행되고 나서도 경찰의 멱살을 잡고 욕을 하고 발길질을 한 것까지도 '주폭'의 기준에 딱 들어맞지만 별일없이 다음날 아침 풀려났다. 경찰은 그가 신분·주거가 분명하고, 관련 전과도 없어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새누리당 한 당직자는 이에 대해 "당원명부 유출과 관련해 자체 조사를 받으면서 심적 스트레스가 컸던 모양"이라고 논평했다. 신분과 주거가 불분명한 주폭들은 사회악이라 붙잡혀 가고, 똑같이 주취 폭력을 저질러도 신분과 주거가 안정적이니 최근 심적 스트레스가 컸나 보다는 말을 듣는 사람 사이에는 똑같이 술취한 사람들이라도 도도히 큰 강이 흐른다. 한 마디로, 사람도 똑같은 사람이 아닌 것이다. 우리 사회가 정말로 싹 다 없애 버리고 싶은 사람은 누구일까.
김현진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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