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올 인물은 다 나온 셈이다. 안철수 서울대교수는 대선을 겨우 다섯 달 앞두고도 여전히 실체인지, 현상인지 모호해 선택범주에 넣을 의미가 없다. 지금껏 그래왔듯 앞으로도 한국정치의 자극제 역할로 남는 게 좋을 듯싶다. 아무리 봐도 그는 현실 정치인이 되기엔 품성이 너무 여리고 정체성도 추상적이다.
각 진영 예비후보들의 정책방향도 대강 다 드러났다. 대동소이한 내용을 요약하면 결국 복지와 유연한 대북정책이다. 정확히 MB정권의 노선과 반대다. 정치 또한 작용ㆍ반작용의 법칙이 작동하는 영역일진대 충분히 예상됐던 방향이다. 오죽 차이가 없으면 야권 후보들의 박근혜 새누리당 경선예비후보 정책에 대한 비판이 진정성이나 시비하는 정도다.
박 후보의 이런 정책방향은 5년 전 자신과도 확연히 배치되는 것이다. 당시 노무현정권 말기에도 빈부격차와 소외계층 문제는 심각했다. 그럼에도 한나라당 경선에서 그는 “다시 (경제)기적, 작은 정부 큰 시장”을 내걸었다. 말할 것도 없이 신자유주의적 논리에 입각한 성장론이다. 그 동안 상황은 크게 바뀐 것이 없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모순이 좀더 분명해진 정도다.
이런 사례는 또 있다. 10년 전 한나라당 경선에서도 가장 첨예한 이슈는 경선 룰이었다. 당시 박 후보는 민심의 반영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룰 변경을 요구했다. 끝내 이회창 총재 측에게 거부되자 곧바로 탈당해 ‘미래연합’을 만드는 초강수를 뒀다. 뒤집어서 이번에는 민심 반영비율 확대를 요구하는 당내 경쟁자들의 일치된 주장을 일축해버렸다.
한눈에도 당내 입지가 약할 때는 민심, 확고할 때는 당심이었다. 소신과 원칙보다 중요한 건 유불리 판단이었다. 올 초 새누리당을 창당하면서 당시 박 비대위원장은 모든 걸 다 바꾸겠다고 단호하게 선언했다. 실제로 당 이름서부터 정강, 색깔까지 다 바꾸고 이 기세로 지난 공천에서 현역의원의 절반을 갈아치웠다. 유독 경선 룰에만 적용한 원칙론이 내내 옹색해 보였던 이유다.
서두가 길어진 것은 박 후보 출마의 변에서 ‘소신과 불통’론이 목의 가시처럼 걸린 때문이다. “소신과 불통은 엄격히 구분돼야 한다”고 했으나 그 역시 길지 않은 기간에 종종 소신을 바꿨다. 물론 소신을 바꾸는 것 자체를 무조건 비난할 건 아니다. 시대상황에 따라 시각과 태도를 과감히 수정할 수 있는 유연성은 도리어 정치인에게 필요한 미덕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행적과 꼭 합치하지도 않는 그의 소신집착은 비타협 불통의 방어막으로 보일 소지가 크다.
더욱이 무엇보다 위험한 건 강자(强者)의 소신이다. 강자의 소신은 자칫 오만해 보이거니와, 이견과 도전을 허용치 않는 획일화의 논리로 작동하기 십상이다. 실제로 총선 이후 새누리당에선 비주류가 사라졌다. 과거 그 권위적인 자유당, 공화당, 민정당 때도 없던 현상이다. 150명 의원 중에서 비박(非朴)으로 분류되는 의원이라야 고작 스물 남짓에 그나마 세 결집도 안돼 지리멸렬이다. 그야말로 일사불란한 일인 정당구조가 됐다.
여러 상이한 의견이 충돌하고 갈등을 빚는 비효율이 어쩌면 정치의 본질이다. 그 과정에서 시간과 노력 비용을 감당하면서 다양한 의견들을 수용, 조정하는 것이 정치다. 그런 점에서 누구도 맞서기 어려운 박근혜식 소신정치는 위험하다. 이런 상황에선 약자를 배려하는 나름의 선의도 강자의 시혜나 은혜가 된다. 감동의 정치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진다는 뜻이다.
좋든 싫든 박근혜는 현재로선 대권에 가장 근접해있는 인물이다. 그의 언행 하나하나는 그래서 다른 후보들보다 훨씬 구체적인 현실감을 갖는다. 그가 출마선언에서 대표적으로 내세운 용어가 ‘국민행복’이다. 수많은 요구를 다 소화할 수 없는 현실정치에서 소통은 그나마 국민의 불행감을 완화하고 공감대를 만드는 유효한 수단이다. 거듭 강조하건대 강자의 소신과 소통은 양립하기 어렵다.
이준희논설실장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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