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전세계 237개국 가운데 면적을 기준으로 108번째인 작은 나라다. 하지만 국내 건설업계는 10만㎢라는 국토의 물리적 한계를 넘어 전세계 14억9,000만㎢ 곳곳에서 '대한민국'을 세워가고 있다.
세계 속의 '대한민국 도시들'
지난달 국내 건설업계가 해외건설 진출 47년 만에 5,000억달러(누계) 수주 달성 소식은 한화건설의 78억달러짜리 초대형 이라크 신도시 건설 수주 낭보와 맞물려 전해졌다. 단독 프로젝트로는 해외건설 사상 최대 규모로,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동남쪽으로 10㎞ 떨어진 비스마야 지역에 분당급 신도시를 개발하는 사업이다. 한화건설은 여기에 주택 10만가구를 포함해 도로와 상ㆍ하수도 등 기반시설까지 건설한다. 이라크 정부가 예산확보와 주택 분양을 책임지는 구조라 재원 마련에 대한 부담도 없다. 건설자금은 현지 정부 예산과 사전 청약을 받은 공무원들이 내는 분양대금으로 조달되며, 이라크 재무부 산하 3개 국영은행이 지급보증을 선다. 한화건설은 공사기간 단축을 위해 공장에서 사전 제작된 콘크리트 구조를 쌓는 방식의 PC공법을 사용, 두 달마다 4,000가구 규모의 단지 하나씩을 완공할 계획이다.
북아프리카 알제리 수도 알제에서 남쪽으로 250㎞ 떨어진 부그줄에서는 우리나라 분당의 약 3배 크기인 6,000만㎡ 크기의 신도시 건설 공사가 한창이다. 알제리 국토개발종합계획에 따라 진행중인 14개 신도시 중 첫 번째 프로젝트로 대우건설이 시공하고 있다. 대우건설은 신도시 부지 조성공사와 함께 50㎞ 길이 도로와,20㎞의 상ㆍ하수도,전기,가스,통신 등의 기반시설도 건설 중이다. 2025년 완공을 목표로 주택 8만가구에 35만명이 거주하는 알제리 최대 규모의 신도시가 우리나라 건설사의 힘으로 지어지는 것이다.
대우건설은 부그줄 신도시 외에 40억달러 규모의 알제리 부이난 신도시 건설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국내 신도시 개발에서 쌓은 경험과 첨단 아파트 시공 능력 덕분에 해외 신도시 건설 사업을 따낼 수 있었다"며 "부그줄ㆍ부이난 신도시 조성 사업을 통해 향후 알제리 국토개발 사업 참여에 유리한 입지도 다질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베트남 호치민시 주변 냐베 일대는 GS건설의 주도로 새로운 도시가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 호치민 남부 개발 축에 위치한 냐베 지역은 349만㎡ 면적에 6만8,0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신도시로 다시 태어난다. GS건설은 4단계에 걸쳐 빌라와 연립주택 1,800가구, 아파트와 주상복합 1만5,200가구, 오피스 등을 조성한다. 1단계 공사가 마무리되는 오는 2014년부터 이곳에는 구역별로 빌라(28가구)와 아파트(1,975가구), 주상복합(785가구)가 차례로 들어서 베트남에 한국의 기술과 자본이 투입된 한국형 신도시가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기대된다.
세계적 랜드마크도 우리 손으로
전세계 주요도시 랜드마크도 국내 건설업체들의 손으로 세워지고 있다. 쌍용건설이 싱가포르 마리나베이 지역에 지은 '마리나베이샌즈(MBS) 호텔'은 2010년 준공되자마자 '머라이언'(상반신은 사자 하반신은 인어 모습인 상상 속 동물)과 함께 싱가포르의 2대 상징으로 떠올랐다. 동쪽 건물이 지상에서 최고 52도 기울어진 채 올라가다 서쪽 건물과 23층(70m)에서 합쳐져 57층까지 올라가고, 꼭대기는 배 모양의 '스카이파크'(전망대와 수영장, 레스토랑, 산책로 등을 갖춘 휴식공간)로 연결되는 비정형적 설계 때문에 세계 유수의 건설사들이 시공을 포기한 고난이도 공사였다. 쌍용건설은 당시 해외 건축 프로젝트 최대 규모인 9,000억원에 수주, 한국건설의 기술력을 입증했다.
현존 세계 최고층(828m) 건물인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는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올렸다. 삼성물산은 역시 부르즈칼리파를 건설하는 데 3일에 한층을 올리는 '층당 3일 공법'을 비롯해 지상 601m까지 고강도 콘크리트를 굳지 않도록 고속으로 쏘아 올리는 콘크리트 압송기술, 인공위성을 이용한 수직도 관리, 무게 430톤 높이 143m의 대형 첨탑을 지상 700m에서 밀어 올리는 첨탑리프트업 시공 등 수많은 최신 공법을 적용해 주목을 받았다.
아시아와 유럽 대륙도 우리 건설업체의 손으로 연결된다. 유라시아터널 프로젝트가 그것. SK건설은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가르는 보스포러스 해협을 총 연장 5.4㎞의 복층 해저터널로 연결하는 공사를 수주, 금융약정을 체결하는 대로 다음달 중 공사에 들어간다. 해저터널의 접속도로까지 포함한 총 공사 구간 14.6㎞에 사업비가 12억달러에 달해, 리비아 대수로 공사 이후 한국 건설업체가 해외에서 수주한 최대 금액의 토목공사로 기록될 전망이다.
전태훤기자 besame@hk.co.kr
■ 단순 토목에서 고도 플랜트로 수주 패턴 진화
해외건설의 경험이 47년간 축적되면서 수주 내용도 단순 시공에서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고도화 전문화하고 있다. 1970ㆍ80년대에는 건축과 토목이 전체 해외건설 수주의 80% 정도를 차지했지만, 2000년대 이후에는 플랜트 건설이 전체 수주액의 65%를 차지하고 있다. 플랜트 분야 중에서도 점점 더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는 고부가가치 사업을 중심으로 수주 패턴이 변화하고 있다.
국내 건설업계는 특히 ▦식수ㆍ산업용수 생산용 담수화 플랜트 ▦석유화학ㆍ정유공장 ▦원자력발전소 등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었으며, 세계 초일류 건설업체들과의 경쟁에서도 뒤지지 않는 위치를 점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최근 50억달러 규모의 영국 친환경 발전설비 공사인 '돈밸리 프로젝트'에 참여키로 했다. 이 사업은 영국 요크셔 햇필드 탄광 근처에 900㎿ 규모의 석탄가스화복합발전과 이산화탄소 포집ㆍ처리시설을 건설하는 고부가가치 프로젝트다. 초고층·발전플랜트 분야에서 축적한 핵심 기술력과 경험이 높은 평가를 받으며 건설 선진국 유럽에서 첨단 발전설비 기술을 과시하게 된 것이다. 삼성물산은 민자복합화력발전과 국내외 원전, 에너지 저장시설, 신재생에너지발전, 환경플랜트 등 기술집약적 사업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대림산업은 고부가가치, 친환경 녹색사업으로 주목 받고 있는 발전, GTL(천연가스를 액화한 석유), 해상풍력 분야를 해외 사업분야의 새로운 미래 성장동력으로 정하고 집중 육성할 계획이다. GTL사업 분야에서는 1BPD(하루 1배럴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급 시범 플랜트 건설ㆍ운영에 대한 기술자문과 운전 자료수집을 진행하고 있으며, 2017년 이후에는 1만BPD급 상용화 플랜트 건설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현대건설은 올 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15억달러 규모의 대형 알루미나 제련공장 건설을 수주했다. 이 공사는 사우디 주베일 항에서 북서쪽으로 90㎞ 떨어진 라스 알 카이르 지역에 연간 180만톤의 알루미나를 생산하는 공장 건설로, 설계 구매 시공 및 시운전을 포함한 일괄 도급 방식이다. 이번 수주는 전통적으로 경쟁력을 인정받았던 원유 및 가스처리 시설과 석유화학 플랜트뿐만 아니라 산업설비 부문에서도 시공능력과 기술력을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태훤기자 besa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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