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돌아보니 그는 별장 유춘길의 아우인 사수 유영길이었다.
내일 당장 포도청을 들이치고 모두 구원해내야지 무슨 논의가 이리 구구하단 말요?
그는 어디서 홧술이라도 먹었는지 눈자위가 불콰했고 목소리도 보통 때보다 훨씬 격앙되어 있었다. 모두들 면목이 없어 고개를 숙이고 잠잠히 앉았는데 김만복이 나섰다.
암, 들이쳐야지! 그러나 대를 나누어 일시에 여러 곳을 쳐야 하네. 그리고 대의명분을 얻으려면 지휘 계통을 밟아 직소도 올려야 하네. 문안에서 의논하기를 이태원과 왕십리에서 동시에 통문을 돌리기로 하였네.
논의하기를, 사건이 일어난 과정과 영장 이하 군인 다섯 명이 체포되어 억울한 국문을 받고 있는 사정을 밝히고, 이번 일의 책임은 오히려 선혜청과 병조에 있다는 것을 알리면서, 명일 오전에 운종가의 좌포도청 앞으로 모일 것과 무위영 장어영의 군병들은 끝까지 행동을 함께할 것을 다짐한다는 내용의 통문을 쓰기로 했다. 별장 김만복이 장지에 위의 내용을 쓰고 김만복, 김장석, 유영길을 위시한 그 자리의 장병들이 모두 제 이름을 올렸고 군사 두 사람이 통문을 들고 집집마다 다니며 모든 이에게 알리고 이름을 받아 적도록 하였다.
이튿날 오전 사시 무렵에 파자교 근방의 좌포청 앞에는 쾌자나 무릎치기를 걸치고 전립 쓴 군인들이 인근 사방을 온통 메울 정도로 모여들었다. 당시에는 수백여 명이었지만 정오가 되면서 파자교 철물교 일대는 물론 배오개 근방에 모여든 군인들까지 합치면 천오백여 명이 되는 듯했다. 이들의 앞에 몇 사람의 장교와 하사관들은 대표로 관문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지만 뒷전에서는 어깨가 벌어지고 힘깨나 쓸 것 같은 장정들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줄지어 서 있었다. 포청 군사들도 서로 넘나들이로 직임이 갈리기도 하고 훈련이며 진법도 함께 받던 동료들이라 오히려 안의 동정을 알려주는 판이었다. 서일수와 이신통은 그 시각에 배오개의 연초전에 있다가 찾아온 김만복과 만나게 되었다. 세 사람은 피맛골 선술집으로 자리를 옮겨 요기 겸하여 탁주를 들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만복이 어제 돌렸던 통문을 보여 주고 나서 분통을 터뜨렸다.
이런 쳐죽일 놈들! 이최응이가 별파진을 동원하여 우리를 진압하라고 했다오.
이최응은 민비가 왕의 섭정이었던 시아버지 대원군 이하응을 견제하기 위하여 영의정까지 시켰던 무능한 사람이었다. 아우인 대원군은 원래부터 허우대만 멀끔한 자신의 형을 소신이 없는 나약한 이로 알고 있다가 근년에 민 씨 외척 세력의 앞잡이가 된 것에 분개하고 있었다. 서일수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빙긋이 웃으며 한마디해주었다.
기왕 뒤집어엎을 바에는 아예 조정의 정국을 바꿔버려야지. 조정 안에 자네들 편을 들어줄 사람을 잡을 수는 없는가?
김만복이 눈을 빛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대원의 대감은 운현궁에서 은인자중하고 있지만….
그렇지, 아마 지금쯤 사람을 풀어 수소문하면서 자네들을 기다리구 있지 않을까?
서일수의 확신에 찬 말을 듣고 김만복이 하급 군인답게 어딘가 불안한 얼굴로 되물었다.
설마 그이가 우릴 만나주겠소?
지금 불만 당기면 화약통이 터질 판이고, 패는 일삼오 갑오일세. 덥석 손을 내밀게야. 이따가 날이 저물고 어두워지면 그때에 가보게나. 통문 앞자리에 기명한 사람들이 주동인 셈이라 함께 가야 할 걸세.
저녁녘에 김만복은 군병의 중심이 될 만한 별장과 포수 사수 등 하급 군교들을 만나 내일 다시 철물교 앞에 모이기로 하고는 약속대로 서일수와 구속된 유춘길의 아우 유영길을 데리고 운현궁으로 갔다. 궁궐처럼 높다란 대문 양쪽으로 줄행랑이 잇달았는데 날이 저물어서인지 수직하는 자도 없이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서일수가 서슴지 않고 이리 오너라, 외치니 하인이 득달같이 달려와 문을 조금 열고 내다보았다.
무슨 일이오?
대원의 대감을 뵈러 온 사람들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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