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스콧 와이트먼 대사님, 귀국의 유통기업인 테스코도 '신사의 나라' 기업답게 약자를 배려하고 상대의 전통문화를 이해하는 기업으로 남아주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영국 유통회사 테스코가 100% 지분을 갖고 있는 대형마트 '홈플러스 테스코'의 무차별 확장에 견디다 못한 서울 마포 재래시장 상인이 급기야 주한 영국대사에게 11일 한 통의 항의 서한을 보내기로 했다. 이들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홈플러스는 2002년 월드컵 이후 상암동월드컵 경기장에 들어선 까르푸를 인수, 월드컵경기장점을 신설했다. 이곳과 직선거리로 1km남짓 떨어진 재래시장인 망원시장과 망원월드컵시장은 직격탄을 맞아 상인들의 매출이 급감했다. 몇 년 뒤 이 시장들과 400m가량 떨어진 망원역에 또 기업형슈퍼마켓(SSM)인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생겼다. 불황에다 대형마트와 상권이 겹친 상인들은 하나 둘 가게 문을 닫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차에 시장에서 700~800m 떨어진 합정역 부근에 홈플러스가 1만4,000㎡에 달하는 또 다른 대형지점(합정점)을 내달쯤 개점할 움직임을 보이자 두 재래시장 상인들이 대형마트의 유례없는 골목상권 압박에 대응해 다각적인 행동에 나선 것이다. 지난달 말 홈플러스 본사에 항의서한을 전달하려 했지만 홈플러스 측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이들은 9일부터 서울 정동 주한영국대사관 앞에서 1인 시위도 계속하고 있고 11일에는 '테스코와 영국정부는 한국의 전통 문화 해체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스콧 와이트먼 주한 영국대사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박종석 마포구상인회총연합회장 명의로 된 이 서한에서 재래시장 상인들은 "한국의 전통시장은 단순히 경제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전통문화 공간"이라고 전제한 뒤 "귀국의 유통기업 테스코가 한국의 실정법을 무시하면서까지 사업확장을 하는 것은 지역상권 붕괴는 물론 전통문화 공간의 많은 중소상인들에게 고통을 가중시키는 행위"라며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2010년 11월 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은 '대형마트는 전통시장과 1km이상 떨어져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망원시장에서 670m 떨어진 홈플러스 합정점은 마포구 조례안 제정 전에 이미 영업허가 등 절차를 끝내 법 적용을 받지 않는 상황이다. 망원시장 관계자는 "대형마트가 들어설 경우 반경 1km 이내 소매업 545개 점포가 영향을 받는다는 한 창업연구소 조사가 있다"며 "망원시장과 망원월드컵시장은 홈플러스 3개 대형마트의 삼각공격을 받아 향후 생존이 막막하다"고 주장했다.
망원시장과 망원월드컵 시장 상인들은 영국대사에게 보낸 항의서한에서 "귀국도 지역 상권과 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일정 부분 대형유통업체를 규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많은 한국 상인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생존권 문제, 그리고 전통문화에 대해 귀국에서 적극적으로 고려해 달라"고 촉구했다. 박 회장은 "똑같은 재래시장 상인으로서 동병상련을 느껴 상인회장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발벗고 나선 이유를 밝히며 "가시적인 성과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