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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한전은 공기업일까 상장기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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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한전은 공기업일까 상장기업일까

입력
2012.07.10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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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이 정부에 반기를 든다? 더구나 주무부처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여태껏 공기업이 정부에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순종뿐이었다.

이 점에서 전기료 인상을 둘러싼 정부와 한국전력의 갈등은 낯설다 못해 신기해 보일 정도다. 정부가 전기료를 4~5% 이상은 절대 올려 주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한전은 지난달 13% 인상안을 제시했다. 결과는 예상대로 퇴짜. 그러자 지난 9일 한전은 10% 인상카드를 다시 내밀었지만, 정부의 불허입장은 완강했다. 한전은 이에 그치지 않고 10일 두 자릿수 요금인상의 당위성과 정부 방침의 부당함을 조목조목 지적하는 자료까지 냈다.

나는 요금 인상폭보다 정부와 공기업 사이에 벌어진 전례 없는 노골적 충돌 자체가 더 흥미롭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런 진풍경이 벌어지게 된 걸까.

첫 번째 해석은 '레임덕'이다. 임기 말에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현상 중 하나라는 해석이다. 사실 기세 등등한 정권 초였다면, 아무리 요금인상이 절실해도 공기업인 한전이 과연 이렇게 대놓고 정부에 반발할 수 있었을까 싶다.

두 번째는 민간출신 CEO와 연결 짓는 해석이다. 한전의 현 김중겸 사장은 현대건설 사장 출신, 직전의 김쌍수 전 사장은 LG전자 부회장 출신이다. 한전 역사상 민간기업 출신 1호와 2호 CEO이다.

전기료 인상에 대한 정부와 한전의 시각차는 늘 있어 왔지만, 갈등이 노골화된 건 김쌍수 전 사장 때가 처음이다. 그는 작년 8월 전기료 인상을 막은 정부에 쓴소리를 쏟아내며 퇴임했고, 뒤 이은 김중겸 사장은 전임자보다 더 팽팽하게 정부와 대치하고 있다.

만약 관행대로 지식경제부 출신 사장이었다면 이렇게 반발할 수 있었을까. 친정(지경부)을 설득하든 아니면 친정에 복종하든, 어떻게든 조용히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주무부처에 연고나 부채의식이 없는 민간출신 CEO들이었기 때문에 주저 없이 대립각을 세울 수 있었던 것 같다.

보다 중요한 세 번째 해석은 '리스크 헤지(회피)'다. 김쌍수 전 사장이 퇴임 전 소액주주들로부터 무려 2조8,000억원의 손해배상소송을 당한 건 널리 알려진 사실. 전기를 계속 원가 이하로 팔아 회사에 막대한 손실을 끼쳤다는 것이 소송이유였다.

황당한 소송이었다. 전기료를 안 올린 것이 아니라 정부 반대로 못 올렸다는 건 세상이 다 아는데 CEO더러 조 단위의 돈을 물어내라니. 하지만 이 소송의 트라우마는 꽤 컸던 모양이다. 한전 경영진과 이사회는 이유야 어떻든 추후 책임추궁을 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이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끝까지 요금인상을 주장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하기야 피소되는 것보다, 정부와 싸우는 것이 훨씬 비용이 덜 드는 선택임에 틀림없다.

따지고 보면 정부도 한전도 여태껏 가장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한전은 공기업이기에 앞서 상장기업이란 것, 정부만 주주가 아니라 수많은 기관과 소액투자자들도 주주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서민경제안정에 기여하는 공익성 못지않게 주주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수익성도 추구해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특히 정부는 스스로 한전을 증시에 상장시켰으면서도, 상장기업이란 사실을 애써 외면해 왔다. 끝까지 물가안정에만 기여시킬 요량이었다면, 애초 한전을 기업공개시키지 말았어야 했다.

결국은 이번 전기료 인상공방도 칼자루를 쥔 정부가 이길 것이다. 한전 경영진과 이사회도 '요금인상을 위해 할 만큼 했다'는 확실한 증빙이 생겼다고 판단되는 순간, 후퇴된 인상안을 내놓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인상률이 5%냐 10%냐가 아니다. 한전을 보는 정부 시각이 바뀌지 않는 한 이 갈등은 언제든 재연될 수밖에 없다. 차라리 전기료 문제를 원점에서, 그리고 원론부터 다시 생각해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성철 산업부장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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