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시행되고 있는 0~2세 전면 무상보육 정책이 반 년도 안돼 보육예산의 절반을 부담해야 하는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부족으로 중단될 위기에 처하자 정부가 긴급 처방을 내놓았다. 이른바'선별적 지원'카드다. 고소득층은 지원 대상에서 빼고 나머지 계층도 소득 수준별로 차등 지원하겠다는 내용이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자체들이 0~2세 전면 무상보육 지속은 불가능하다고 하소연하는 현실에서 모두에게 도움이 되도록 제도를 바꾸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해'전면 무상보육' 폐지는 확정적이다.
하지만 이를 둘러싼 논란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시행 1년도 안 돼 궤도를 수정키로 한 건 표를 의식한 총선용 정책이었을 뿐이라는 비판이다. 무상보육 대상에서 제외될 계층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전문가들의 입장은 갈리는 분위기다.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 부소장은 "복지 선진국들도 전면 무상보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곳은 없다"며 "무상지원 필요성이 높지 않은 상위층은 스스로 부담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반면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보육 시설을 이용하지도 않을 부유층을 문제 삼아 소득상위층 지원을 배제하겠다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며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누릴 수 있는 보편적 복지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 찬성/ 보육서비스도 경쟁 있어야 질적 개선… 전면 지원은 양육 책임감 약화시킬뿐
19대 총선과정에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0~2세 무상보육 정책이 정부에서 재설계되는쪽으로 가고 있다. 행정부의 개편안에 따르면 0~2세 무상보육을 소득 하위 90%에게만 지원하되 맞벌이 가정에는 모든 소득계층에 대해 보육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할 예정이다. 당초 무상보육 대상을 소득 하위 70%로 축소하기로 했으나 반발에 부딪치자 확대키로 방향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되면 앞으로 소득 상위 10% 홑벌이 가정은 0~2세 자녀의 보육비를 본인이 부담하게 되고, 소득상위 10~20% 혹은 10~30% 계층은 보육료를 절반 내게 된다. 이는 정치권과 행정부간 일종의 절충안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개편안을 선별지원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일부 국민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전 국민을 대상으로 무상보육을 실시하기 때문이다. 이미 언론에 보도되었듯이 무상보육은 중앙정부가 절반을 부담하고 지방정부가 나머지 절반을 부담해 재원을 마련하는 구조여서 재정여건이 어려운 지방정부가 무상보육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었다.
비록 정부의 개편안은 보편적 지원에서 선별적 지원으로 선회했다고 보기에는 크게 미흡하지만 그나마 무상지원 필요성이 높지 않은 소득 상위층에 대해 이를 스스로 부담하게 한 것은 조금이나마 더 나은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보육서비스도 여행이나 운송서비스와 마찬가지로 공급자들이 소비자들의 더 많은 선택을 받기 위해 더 저렴하고 질이 좋은 서비스를 공급하려고 경쟁하는 환경이 될 때 소비자들의 다양한 필요에 맞게 서비스가 공급된다. 스스로 자신의 주머니에서 돈을 내고 서비스를 구입하는 수요자들이 존재할 때 공급자들이 이들의 수요에 맞는 공급을 하고자 노력할 유인이 발생한다. 그런 점에서 소득 상위 10%로서는 '무상보육+ 획일화된 서비스' 대신 '전액 부담+ 자신의 필요에 맞는 보육서비스'를 얻게 된 셈이다. 물론 세금을 많이 낸 사람들에 대해 보육서비스로 돌려준다는 차원에서 이들에게도 무상보육을 해줄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그들에게 그만큼 세금을 덜 부담시키는 것이 낫다.
만약 무상보육의 전면적 실시로 자신의 자녀를 스스로 책임 지고 키우는 풍토가 저해된다면 가정의 유대가 약화될 우려도 있다. 어릴 적에는 유모 국가(nanny state)가 키우고, 늙어서는 연금국가가 부양하는 구조가 고착되면, 타고난 가족 간의 유대는 남아있겠지만 정성을 들여 '키운 정'이 줄어들고, 부모의 노후문제를 자신과는 상관없는 문제로 여기는 자녀들이 많아질 수 있다. 그런 사회가 좋은 사회일까. 맞벌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어린이집에 맡겨야 하는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가장 좋은 보육사인 어머니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자신을 돌본다면, 영유아의 입장에서도 결코 반갑지 않을 것이다.
정부의 개편안에는 가정에서 양육하는 것과 유아원 같은 시설에 맡기는 보육 중 하나를 선택할 때, 지원수준을 동일하게 하고 있다. 종전에는 홑벌이 가정에서 어머니가 자녀를 양육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상지원을 받기 위해 자신의 영유아를 어린이집에 맡기는 일이 벌어지고, 이에 따라 맞벌이 부부는 아이를 맡길 유아원을 찾지 못하는 사태가 빚어졌었다. 개편안은 이런 문제를 방지하고 있어 다행이다.
이에 더해 어린이집에 지원되는 돈을 지불함에 있어서도 정부가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직접 보육시설에 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이는 보육시설들 간에 부모들의 선택을 받기 위한 경쟁을 유도해 더 나은 보육서비스를 유도할 것이다.
소위 선진 복지국가도 보육서비스를 전액 무상으로 하지 않고 부모에게 일정액을 부담시킨다. 그 까닭은 부모가 자녀에 대한 책임감을 유지하게 하는 동시에, 보육시설의 서비스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게 하기 위해서다. 향후 선별적인 지원 방향으로의 개선이 있기를 바란다. 아이는 자신의 책임 아래 사랑과 정성으로 길러야 한다. 그것이 기본이고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선별적으로 세금을 통해 사회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 부소장
■ 반대/ 재벌가 꼬투리 잡아 30% 배제는 비약… 결국은 중산층이 최대 피해 불 보듯
3월 시작된 무상보육이 좌초위기에 직면했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정부와 여당 간의 당정협의도, 사회적 합의도 없이 4ㆍ11 총선을 앞두고 졸속으로 실시되었던 0~2세 무상보육이 흔들리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예정된 수순이라고 할 수도 있다.
보편적 복지가 눈엣가시였던 기획재정부가 이 좋은 기회를 그냥 둘 리 없다. 정치권의 포퓰리즘을 비판하며, 재벌의 손자녀들에게도 보육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지적하면서 보편적 복지에 대한 정치적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재정부는 우리사회에서 국민들이 느끼는 불공정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는 것 같다. 전체 국민의 0.1%에 불과한 재벌일가의 손자녀들에게도 무상보육서비스 이용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 불공정한 것인지, 재벌일가에게 주어지는 수십조의 조세감면혜택이 불공정한 것인지 국민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역설적이지만 국민들은 재벌 손자녀들이 무상보육서비스의 대상이 되는 것을 불공정하다고 느끼지 않을지도 모른다. 재벌일가의 손자녀들이 함께 이용하는 보육시설이라면 우리 자녀들을 믿고 맡겨도 좋지 않겠는가. 국민들은 오히려 재벌일가의 손자녀들이 우리 동네 보육시설을 함께 이용하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보편적 복지가 부자와 중산층을 포괄하고자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우리는 재벌일가의 자녀들이 동네 보육시설을 이용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더욱이 이용하지도 않을 극소수 재벌일가의 손자녀를 문제 삼아 소득상위 30%를 배제한다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소득상위 30%의 국민이 재벌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재정부의 역할은 보육서비스를 선별적 서비스로 되돌리기 위한 정치공세를 하는 것이 아니다. 아동들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재원마련 방안을 찾는 게 그의 일이다. 신년연설에서 이명박 대통령조차도 보육이 복지이자, 미래를 위한 투자이고 저출산과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대응책이라고 강조했던 사실을 재정부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증세를 제안하든 조세감면규모를 축소하든 현재 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통해 부족한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재정부 차관이 "보육서비스를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절반씩 부담해온 원칙을 깰 수 없다"고 강변한 것은 지극히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이다. 변명이 되지 못한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지방정부도, 중앙정부도 모두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정부이고, 서초구에 살고 있는 시민은 서초구의 주민이자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더불어 이번 기회에 무상보육과 보편적 보육서비스를 동일시하는 인식도 고칠 필요가 있다. 보편적 보육서비스는 단순히 비용만의 문제가 아니다. 보편적 보육서비스는 대한민국의 아동 누구나 가구소득, 거주지역, 장애여부 등과 관계없이 공적으로 제공되는 양질의 서비스를 이용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가구소득이 양질의 공적서비스 이용을 가로막아서는 안되며, 아동의 장애여부가 서비스 이용 권리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 비용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비용을 지원하고, 시설이 적절하지 못한 경우에는 시설을 보완해주는 것이 보편적 보육서비스의 핵심이다. 비용은 보편적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한 가지 요소일 뿐이다. 더욱이 현재 무상보육은 무늬만 무상이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민간 어린이집에서는 특별활동비라는 명목으로 별도의 비용을 부모로부터 걷고 있고, 부모로서는 이를 거부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현재 정부의 지원규모를 유지하고, 특별활동비와 질 개선을 위해 요구되는 추가비용을 가구의 부담능력에 따라 차등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부족한 보육서비스 재원을 누가 분담해야 할지는 국민이 고민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국민은 양질의 공적서비스를 누릴 권리가 있으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이 서비스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 만약 보육서비스 중단이 현실화 한다면 최대 피해자는 중산층을 포함한 대부분의 평범한 국민이며, 이명박 정부, 새누리당, 지방정부 모두는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