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값 문제가 별거냐고들 하지만 학교가 의무식이라는 이름으로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생들에게 식권을 끼워 파는 위법 행위를 계속 하는 걸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성균관대 물리학과 2학년 강명우(25)씨는 "어디서 어떤 음식을 먹을지 선택하는 것은 학생들의 당연한 권리인데도 학교가 그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며 이 같이 말했다. 그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사상 처음으로 대학 기숙사 식당 의무식제의 적법성에 대해 조사하도록 한 장본인이다. 2009년 처음 성대 수원캠퍼스 기숙사 생활을 한 강씨는 매월 식권 10장을 그냥 버려야 했다. '연강'이다 '팀프로젝트'다 해서 점심 2시간, 저녁 1시간30분의 배식 시간을 지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남은 식권을 다음달에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성균관대가 지난 1학기까지 기숙사 학생들에게 의무적으로 구입하도록 한 식권 숫자는 월 60끼. 식비는 매 학기 초 일괄 납입하는데, 한 학기 평균 230끼에 해당하는 60만원 정도의 식비를 선납하지 않은 학생은 기숙사 입사 자격이 박탈된다. 이런 상황에서 매달 식권 10~20장을 그냥 버리는 학생이 부지기수라는 게 강씨의 설명이다.
강씨는 여러 차례 학교 측에 버려지는 식권이 많으니 의무식을 바꿔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불만이 있으면 퇴사해라, 오고 싶어하는 학생이 많다"는 답만 들어야 했다. 몇몇 학생들이 의무식이 학생 권리를 침해한다는 내용의 대자보를 기숙사에 붙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불똥이 경비 아저씨들에게 튀었다.
"학교측이 같은 일이 다시 생기면 경비 아저씨들을 해고하겠다고 경고했죠. 그런데 우연히 방송을 보다 '대학 기숙사의 의무식제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식권 강매로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행위'라는 변호사의 말을 들었죠. 그때 결심했어요."
강씨는 지난 4월5일 공정위에 "성대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기숙사 식권 끼워팔기를 하고 있다"고 제소했다. 공정위는 대학과 기숙사 식당을 운영하는 삼성에버랜드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그러자 지난 주 성균관대는 2학기부터 기숙사 의무식제를 폐지하기로 했다. 공정위는 강씨에게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매출의 최대 2%까지 과징금이 부과될 거라는 얘기도 전해줬다.
이처럼 권리 찾기에 앞장섰지만 정작 그는 학생회나 시민사회 단체에 속해 있지 않다. 그래서인지 주변에서는 학생이 공부나 하지 왜 그렇게 극성이냐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강씨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저명한 천문학자 칼 세이건처럼 과학자도 사회적 책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의 꿈은 천문학자다.
"권리는 크고 작고의 문제로 볼 수 없다고 생각해요. 잘못된 제도를 바로 잡기 위해 모두가 정치인이 될 필요도 없죠. 나라는 국민이, 학교는 학생이 바꿀 수 있는 사회가 될 때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된다고 봅니다."
대학 기숙사 의무식제 폐지를 이끌어낸 강씨는 앞으로는 교내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의 주휴수당 권리 찾기에 힘을 쏟을 생각이다. 강씨는 현재 대학 도서관에서 최저임금인 시급 4,580원보다 20원 많은 시급 4,600원을 받고 하루 8시간씩 주5일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하지만 주휴수당은 한번도 받지 못했다. 근로기준법에는 고용 형태에 관계 없이 주당 15시간 이상 근무하는 노동자가 5일을 개근했을 경우 하루치 임금에 해당하는 주휴수당을 지급하도록 명시돼 있다. 사용자가 이를 어길 경우 임금체불(근로기준법 위반)에 해당된다.
"대학이 기업화되는 것을 두고 좋다 나쁘다 말이 많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죠. 공영이든 민영이든 법부터 지켜야 한다는 것 말이죠."
강씨의 노력으로 월 30~60끼를 의무식으로 하는 연세대와 이화여대, 고려대, 경희대, 건국대 등 다수 대학도 공정위 조사 결과에 따라 의무식 제도를 손질할 수 밖에 없어 많은 학생들이 혜택을 받을 전망이다.
수원=글ㆍ사진 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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