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그가 "하고 싶은 것은 하는 성격"이 아니었더라면 국내에 '반도네온(bandoneon)'의 아름다운 음색이 이렇게 널리 알려질 수 있었을까. 고상지(29)씨는 네모난 주름상자에 수십 개의 버튼이 달린 반도네온의 연주자다. 탱고에서 빠질 수 없는 악기다.
지난해 인기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소개된 뒤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은 그는 크고 작은 연주회로 올 상반기를 바쁘게 보냈다. 지난 5월 서울재즈페스티벌에서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건 연주회를 가졌고 지난달에는 이색 퍼포먼스 '서커스, 워치 마이 쇼!'에 음악감독으로 참여해 안무가 김영진씨, 영화감독 양효주씨 등과 함께 작업했다.
오는 19일에는 서울 삼성동 올림푸스홀의 '탱고와 부에노스 아이레스' 무대에 오른다. 현대음악 전문 연주단체 TIMF앙상블과의 협연이다. 그는 "관객이 일상에서 흔히 듣는 곡이 아닌데 좋다고 느껴 주면 기분이 좋다"며 "올해 들어서는 하고 싶은 레퍼토리를 연주하며 즐거웠다"고 말했다. 곡목 선택에 자신의 의견이 많이 반영된 이번 공연에도 기대가 큰 눈치다. 국내 관객에게 익숙한 'Oblivion' 'Libertango' 등 피아졸라의 곡들을 들려준다.
고씨는 고등학생 때 음반을 통해 접한 탱고와 반도네온에 매혹됐다. 카이스트 진학 후 혼자 반도네온을 익히기 시작했고, 일본의 저명 연주가 고마쓰 료타에게 배울 기회를 얻은 뒤 2009년 초 아예 아르헨티나로 유학 가 에밀리오 발카르세 탱고 오케스트라 학교에서 2년간 공부했다. 그는 "셈이 빨라 진학했던 카이스트에서 적성에 맞는 진로를 찾기 어려워" 학업을 중단했고 스무 살 넘어 본격적으로 음악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지만 큰 용기는 필요 없었다고 한다. "앞날을 계획하기보다 순간의 삶에 집중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반도네온에 투자한 시간이 짧지 않지만 탱고는 일종의 문화이기에 아직도 모르는 부분이 많다고 그는 생각한다. 특히 반도네온을 아코디언과 혼동하는 이들을 만날 때면 서운한 마음이 든다. 독일 교회에서 오르간 대용으로 사용됐던 반도네온은 "아코디언보다는 하모니카에 가깝다"고 그는 설명했다.
영화음악, 무용음악 등에 쓰려고 작곡한 곡을 모아 앨범을 낼 계획도 갖고 있다. "절반은 반도네온 연주 없는 음악이 될 거예요. 탱고를 바탕으로 그간 하고 싶었던 제 음악을 소개하는 거죠."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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