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시인이 된 후 아빠가 재미 붙인 일이 하나 있다. 어쩌다 내가 신문에라도 나올라치면 휘파람 불며 가위질해서 스크랩북 만들기, 그래놓고 보고 또 보기. 하기야 퇴직 이후 아빠의 삶에 이렇다 할 낙이랄 게 뭐 있으랴. 그런 아빠에게 유일한 소원이 있으니 바로 국어교과서에 내 시가 실리는 일이다.
열두 번 죽었다 깨도 하지 못할 효도임을 알기에 일찌감치 포기시키려 했던 것도 사실, 그러나 야무진 꿈의 소유자인 아빠는 그때마다 허수경 시인의 시 한 대목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비애로 가는 차, 그러나 나아감을 믿는 바퀴라고 했던가. 엄마도 알고 아빠도 알고 일 년에 책 한 권 안 읽는 우리 제부도 아는 시인 도종환.
시가 무슨 죄라고 그가 국회위원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검인정 교과서에 실린 그의 작품을 다 빼라고 했다기에 욕부터 찍 뱉었다. 나 참 국회위원이 될 것을 작정하고 이때다 써먹을 욕심에 근 30년을 가난한 시인으로 살았겠냐고.
어디서부터 이런 해괴망측한 발상이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노벨상 받은 시인 출신의 대통령도 있고 유명한 에세이스트이자 장관도 흔해빠진 지구촌 곳곳의 나라들로 보자면 강에다 대고 퍽퍽 삽질이나 하는 이 나라에 무슨 희망을 걸까 슬퍼지기도 하는 것이었다. 가만, 도종환 시인을 교과서에서 빼면 그 자리는 누구로 채우나. 나 좀 넣어주지. 다른 건 잘 몰라도 음담패설과 갖가지 욕설이라면 내 시만 한 교재 없을 텐데.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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